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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서울과 부산에서 자주 보이는 구불구불한 도로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by 지식노트 2021.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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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럼시스트(Palimpsest)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 양피지 위에 글자가 여러 겹 겹쳐서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 양피지에 글을 쓰던 시절에는 귀한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서 이미 쓴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글자를 써서 이전에 쓰인 글자들 위로 새로이 쓴 글자가 중첩되어 보이는 일이 흔했습니다.

가장 손쉬운 예로 강북의 복잡한 도로망을 들 수 있습니다. 과거 도시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상하수도 시설은 인간이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건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이런 인프라가 구축되기 전 조선시대 주거들은 한강의 지류를 따라서 형성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실개천 주변으로 주거들이 들어서게 되고 그 옆으로 사람과 말들이 지나다니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도로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시대의 도시는 수변 공간 주변으로 빨래를 하고 상하수도 시설로 사용하는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하천의 위생 문제가 심각해지고 동시에 자동차 도로의 확보가 도시 형성에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부각되면서 하천 부지는 거의 대부분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강북의 도로망은 많은 부분이 구불구불한 자연하천과도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대형 간선도로가 들어서게 되면서 과거 하천 중심으로 커뮤니티의 중심권이 형성되었던 것과는 반대로 도로가 기존 커뮤니티를 나누는 문제가 대두되었고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과거의 기술적 한계와 오랜 시간의 역사가 현재 우리가 사는 공간을 규정하고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로마는 팰럼시스트의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로마는 과거 인구가 100만명에 이르다가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버려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로마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타이버 강의 범람으로 6m가량의 퇴적층이 쌓여서 과거 유적들을 덮었습니다.

이후 꾸준히 인구가 늘게 되면서 점차 고대 로마의 도시 흔적이 다른 종류의 도시 공간으로 전이됐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전차경기장이었던 곳으로, 경기장은 퇴적된 흙으로 덮여 없어지고 형태만 남아서 지금의 나보나 광장이 되었습니다

 

나보나광장

실제로 나보나 광장의 뒷골목 식당에는 식사를 하던 위치가 과거 전차경기장의 좌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전차경기장은 없어지고 르네상스 시대에 베르니니에 의해서 아름다운 분수가 있는 광장으로 바뀌었지만, 말굽 모양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나보나 광장의 형태는 과거 로마시대의 전차경기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유럽의 도시들은 로마시대 때 만들어진 도시와 중세시대 때의 도시로 나뉩니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듯이 과거 로마의 도시에는 대부분 검투사 경기를 위한 콜로세움이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 주민들이 당시로서도 귀한 건축 재료였던 돌을 얻기 위해서 콜로세움에 있는 돌을 뜯어냈습니다.

그러나 돌이 무거운 관계로 멀리 가지 못한 채 콜로세움 주변에 건물을 지어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콜로세움 모양의 달걀 형태 광장이 생겨났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콜로세움을 집합주거로 변형시켜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경향신문 사설, 포도주 같은 건축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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