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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42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어디서 생겼을까? 옛 문헌이나 옛날이야기에서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다,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건 얼마나 가난한 것일까요? 가난한데 똥구멍이 왜 찢어지는 것일까요? 조선시대 농민들이 지금보다 말도 안 되는 어려운 삶을 살았다는 것은 다들 당연히 인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한 해의 농사로 다음 해에 먹고살았기 때문에, 수해, 가뭄 등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치면 당장 겨울부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농사를 망치면 당연히 닥치는 대로 주위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먹어서 자식들의 굶주림을 해결해야 했겠지요.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초근목피(草根木皮)입니다.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라는 말로, 배고픈 백성들이 나무껍질을 벗겨서 먹거나 풀뿌리를 캐서 먹던 처절함에서 유래한 .. 2024. 1. 18.
떼돈 번다 할 때, 떼돈은 어디서 나온 말일까? ‘떼돈’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뜻합니다. 너 장사해서 떼돈 벌겠다, 떼돈 벌었겠네라는 말에서 '떼'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과거 강원도 지역에서 생산된 목재(소나무)는 일등품으로 취급되어 하천을 이용해서 한양으로 운반하여 각종 건축에 사용하였습니다. 인제 한계리, 영월 두산리 등이 유명한 소나무 생산지였는데, 도성의 궁궐 건축 등에 사용될 정도로 인기있는 목재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는 육로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를 엮어 물에 띄워 뗏목으로 만들어 하천으로 운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였습니다. 수량이 적은 상류에서는 폭과 길이가 작은 소형 뗏목을 만들고, 수량이 풍부한 하류에 이르면 대형 뗏목으로 다시 묶어 운반했는데, 서울까지 가는데 7∼15일 걸렸다고 합니다.. 2023. 12. 19.
조선이 버린 여인들, 이태원의 가슴 아픈 지명 유래 예로부터 외국인들을 위한 가게, 시설이 많아 외국인들의 성지라 불리우던 이태원, 얼마 전에는 많은 청년들이 죽은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의 이름에는 우리 민족의 가슴아픈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태원의 한자는 배나무 리(梨)’를 써서 ‘이태원(梨泰院)'이라고 불립니다. 이태원은 표기하는 한자가 세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조선 초에는 ‘오얏나무 이(李)’를 써서 ‘이태원(李泰院)’이라 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진 ‘이태원(異胎圓)’으로 바뀌었고, 이후 효종때부터 다시 ‘배나무 리(梨)’를 써서 지금의 ‘이태원(梨泰院)’이라 고쳐서 불리우고 있습니다. 이태원의 지명은 왜 세 번이나 바뀌었을까요? 이태원의 지명은 임진왜란 후 '씨가 다른(異) 아이를 임신했다(胎)'는 뜻의 異胎院으로 썼다는.. 2023. 11. 15.
대역죄인에게 내린 '기록말살형', 담나티오 메모리아이(Damnatio Memoriae) 능지처참(陵遲處斬)이나 부관참시(剖棺斬屍)라고 하면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대역죄인에게나 내리던 가장 가혹한 형벌입니다. 로마제국에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극형인 '담나티오 메모리아이(Damnatio Memoriae)'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흔히 '기록말살형'으로 번역되는 이 형벌은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 황제, 장군, 정치인 등 권력자의 모든 기록을 없애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형벌이 내려진 죄인에 관련한 모든 조상(彫像)과 초상이 파괴되고 공식 문서와 비문, 통화에서 그의 이름이 삭제됩니다. 기록뿐 아니라 그를 기억할 만한 기념물까지도 모두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명예를 중요시하던 고대 로마에서는 사형보다 더 중한 형벌로 취급되었습니다. 칼리귤라·네로·도미티아누스·코모두스 등 특별히 악독한 황제들에게 담.. 2023. 9. 1.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불치하문(不恥下問)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적 문화로 인해 위계와 연공서열이 사회문화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나라에서, 아랫사람이나 후배에게 무엇을 물어본다는 것이 곤란할 때가 이따금식 존재합니다. 그럴 때마다 공자가 말했던 '불치하문(不恥下問)' 즉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를 생각합니다. 불치하문이라는 사자성어는 논어 공야장편(公冶長篇)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춘추시대 위(衛) 나라의 대부 공어(孔圉)는 행실이 바르지 않고 욕심이 많은 소인배였습니다. 그는 부하인 태숙질을 부추겨 본처를 내쫓고 자기 딸을 아내로 삼도록 했는데, 이에 질린 태숙질이 송나라로 달아나자 공어는 딸을 데려와서 태숙질의 동생에게 아내로 맞도록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공어가 죽은 후 위왕은 그에게 공문자(孔文子)라는 시호를 추증하였.. 2023. 6. 29.
조선시대 품계 설명, 대감(大監)과 영감(令監)의 차이 조선시대 직급은 문.무반(文武班) 각각 가장 높은 정 1품부터 가장 낮은 종 9품까지 총 18단계의 직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지금의 공무원과는 다른 것이 당시에는 절대 다수의 백성들이 농민이었고, 공식 직급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아주 높은 신분으로의 상승을 의미했습니다. 정1품부터 정3품 상계인 문관의 통정대부 이상을 당상관, 정3품 하계인 통훈대부 이하 종6품까지를 당하관(참상관), 정7품부터 종9품까지 참하관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 품계는 다양한 위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1) 호칭의 차이 : 우리가 흔히 사극에서 많이 듣는 삼정승(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은 가장 높은 정1품, 병조판서 등 00판서는 정2품이었습니다. 직급에 따라 부르는 호칭도 달라졌는데, 정2품 판서 이상은 '대감',.. 2023. 6. 15.
베이징의 인사동, 유리창(琉璃廠) 문화거리 서울에서, 대한민국에서 古서적과 골동품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 인사동을 떠올릴 것입니다.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구한 중국의 역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골동품과, 국보급 보물들을 낳았습니다. 중국에서 이러한 물품들을 찾으려면 베이징의 유리창 거리로 가야 합니다. 천안문 광장 남서쪽에 위치한 유리창은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한 곳으로 고서적, 골동품, 서화작품, 문방사우 상가들이 모여 있는 문화예술의 거리입니다. ‘유리창’이란 지명은 13세기 원나라 때 유리 기와를 굽던 황실 가마를 설치한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한족들의 도자기에 큰 애착을 가졌던 몽골인들은 베이징 외곽에 도자기, 기와 공장을 세웠습니다.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탄생한 명나라 가정(嘉靖) 32년(1554년)에.. 2023. 2. 2.
일본과 중국의 변발머리는 왜 생겨난 것일까? 옛날 사극을 보다보면 중국과 일본에 머리를 밀고 양 옆에만 머리를 남기거나, 머리의 앞 부분을 모두 밀어 뒷부분만 남기는 특이한 헤어스타일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헤어스타일을 중국에서는 '변발'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촌마게'라고 하는데요, 이들은 왜 이런 특이한 머리를 하게 되었을까요? 이 두 가지 헤어스타일은 모두 전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 북방민족의 전통 헤어스타일입니다. 물이 귀한 유목민들의 환경 특성상 머리 감기가 어려웠고, 긴 머리를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릴 때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에 이런 머리를 하고 다녔습니다. 또한 식량을 얻기 위해 약탈과 전쟁이 일상이던 민족이었기에, 투구를 오래 쓰면 머리가 빨리 뜨거워졌습니다.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온 효과가 있.. 2022.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