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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시대 최고의 의결기관 의정부, 왜 지금은 지명으로 바뀌었을까?

by 지식노트 2021.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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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에겐 지명으로 더 익숙한 이름이지만 의정부는 사실 조선시대 최고 의결기관, 지금으로 따지면 행정부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최고의 의결기관은 왜 서울 동북부의 지명으로 바뀌어 불리는 것일까요?

'의정부'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최고 의결기관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태종이 임금이던 태상왕 시절에 의정부(현재 의정부시)에 머무르며 6조 판서와 정사를 의논하였다고 하여 그 명칭이 이 곳의 명칭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조선 초 1400년 2차 왕자의난 이후 이방원은 제3대 태종으로 전위하나 태조(이성계)는 태종에 대한 증원의 감정을 참지 못해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립니다. 이에 태종은 여러차례 차사를 보냈지만 태조는 물론, 차사 역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무학대사가 함흥으로 가 설득하여 환궁을 하게되고, 태종은 지금의 호원동 전좌마을까지 나와 부왕 태조의 환궁 환영 준비를 하는 가운데 신하의 의견으로 아름드리 나무로 고주기둥을 세우는데 때마침 도착한 부왕 태조는태종에 대한 노기가 충천하여 활궁에 철전을 매어 잡아당겼으나, 살은 연대에 꽂히고 태종은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그후 태조는 끝내 환궁치 아니하고 이곳 의정부에서 잠시 머물러 있다가 남양주군 진접면 내각리 풍양군에서 지냈다고 전해오는데, 1408년5월 개경에서 춘추 74세로 승하했습니다. 태조가 의정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조정대신들이 이곳까지 와서 정사를 논의하는 한편, 태상왕의 윤허를 받았다고 하여 조선시대 최고 관청의 명칭을 따서 의정부라 부릅니다.
의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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