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서면 보고 들리는 것이 달라집니다. 휴대폰으로 목청 높여 통화하는 사람들은 중국말을 쓰고, 간판엔 중국식 간자체가 보입니다. 좌판에서 파는 간식은 해바라기씨와 호박씨이고, 빵집에선 중국식 호떡과 꽃빵, 튀긴 꽈배기를 팝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는 어느새 작은 중국이 됐고, 우리 이웃이 된 중국인들이 골목골목 살고 있습니다. 가리봉동은 조밀하고, 작은 곳입니다. 이 동네는 왜 차이나타운이 되었을까요?
1970년~1990년 무렵까지 대림동, 가리봉동 일대는 구로구, 영등포구 일대처럼 옷가지 몇 개 들고 서울로 상경한 이른바 ‘공돌이, 공순이’의 집단 거주지였습니다. 산업화로 구로공단에는 하루가 다르게 공장이 들어서고 그 공장을 돌리기 위해 수많은 젊은 일꾼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싸지만 열악한 가리봉동의 ‘쪽방’으로 몰려들었습니다.
1990년대 공장이 시화, 반월 공단 등으로 떠나던 시기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집니다. 가난한 동북 3성의 조선족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행 비자를 삽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열악해도 싼’ 방을 찾습니다. 가리봉동에 짐을 푼 중국 동포는 수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들을 상대로 한 가게들이 문을 엽니다. 비자, 휴대폰, 음식점, 식품점, 노래방, 술집 등이 옹기종기 모이면서 가리봉동 ‘조선족 타운’이 형성되었습니다.
구로가 디지털산업단지로 변모한 2000년대, 구로가 디지털단지로 탈바꿈합니다. 자연스럽게 구로디지털단지 주변 지가가 상승하고 빨간 벽돌집들이 오피스텔, 신축 빌라로 대체되기 시작합니다. 자연스럽게 임대료 상승이 일어납니다.
가리봉동 등에 거주하던 조선족들은 더욱 저렴한 집을 찾아 떠나며 집단 이주가 발생합니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미흡해 지대가 싼 대림2동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생깁니다.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대림동에 하나의 배타적 공간을 형성하고, 가리봉시장과 함께 화교가 자리 잡은 대림중앙시장이 중심이었습니다.
대림중앙시장은 그렇게 중국인 시장으로 변화합니다. 월병, 양꼬치, 만두, 훠궈, 꿔바러우 등 우리에게는 매우 중국적인 음식들이 길가에 즐비합니다. 우리가 아는 가리봉, 대림 차이나타운은 이렇게 생겨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