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패율제가 뭘까요?
선거에서 패배해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신기한 제도가 있습니다. 일본과 독일 등 국가에서 실시되고 있는 이 제도의 이름은 '석패율제'입니다. ‘석패’란 경기에서 약간의 점수 차이로 아깝게 지는 걸 말합니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A 정당 후보가 B 정당 후보에게 간발의 차로 지는 경우가 있죠(ex. 51:49). 이렇게 아깝게 떨어진 후보에게 비례대표로 당선될 기회를 주자는 게 바로 ‘석패율제’(a.k.a. 패자부활전) 입니다. 낙선자와 당선자의 표차가 작을수록 낙선자는 비례대표로 구제될 가능성이 커지고, 이렇게 되면, 떨어진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의 뜻을 선거에 반영할 수 있게 되는 취지입니다.
석패율제는 특히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에 기반한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변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특정 정당이 계속해서 득세하는 정치 문화를 바꾸기 위해 일견 필요해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지역 구도를 타파해서 절대 당선 불가능한 곳에 일종의 견제세력이 등장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수십년간 보수정당이 발붙이지 못했던 호남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했다가 떨어진 후보가 비례대표로 부활하게 된다면, 앞으로 호남지역의 한나라당 기반을 만드는 것이 될것이고, 이와 반대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비슷한 일을 해낸다면 점진적으로 지역구도가 타파되지 않을까하는 기대입니다.
■ 석패율제는 실제로 어떻게 운영될까?
아쉽게도 석패율제가 운영되고 있는 일본에서 석패율제는 일종의 '거물급 중진들을 위한 패자부활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각 정당의 간판으로서, 자기 선거운동에만 전념할 수 없는 중량급 정치인이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고 싶지 않을 때, 지역구-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를 함으로써 지역구에서 패하더라도 의원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만 활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1996년 선거구당 1위 득표자 1명을 뽑는 중의원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면서 비례대표 석패율 제도를 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하원 격인 중의원(의원 정수 총 465명) 선거 시 1위만 당선시키는 지역구(소선거구) 의원 289명, 비례대표 의원 176명(전체 중의원 의원의 38%)을 각각 뽑습니다.
일본 중의원 비례대표 선거는 전국 11개 권역별로 유권자들의 정당 투표(※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한 유권자가 지지 후보자와 지지 정당에 별도 투표) 결과를 집계해 정당별로 의석수를 배정합니다. 지역구 출마자가 동시에 권역별 비례대표에도 이름을 올리는 중복 출마가 가능합니다.
특히 한 정당의 비례대표 동일 순번에 여러 명의 지역구 출마자를 복수로 입후보시킬 수 있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석패율(소선거구에서 낙선한 후보의 득표수를 해당 선거구에서 당선된 후보의 득표수로 나눈 것)이 개입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한 정당이 특정 권역 비례대표 명부 1번에 지역구 출마자 3명을 입후보시키고 그 정당이 해당 권역 비례대표 득표상 1석을 확보했다면 비례대표 1번 후보 3명 가운데 지역구 당선자를 뺀 나머지 후보들의 석패율을 따져 가장 높은 사람이 당선되는 방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지역구에서 패하고 비례대표에서 석패율로 구제된 당선자를 일본에서는 '부활당선자'라고 부릅니다.
동일 정당에서 비례대표 같은 순번에 등록한 후보자 중 지역구 낙선자끼리 비교해서 '부활 당선자'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90% 이상의 석패율을 기록하고도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20%에 채 못 미치는 석패율로 당선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총 8차례에 걸쳐 지역구 패배후 비례대표에서 회생한 일본공산당 소속 고쿠타 게이지(穀田惠二) 의원과 같은 '부활당선 전문 의원'이라고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