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시절 무적함대를 필두로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스페인의 과거는 정말로 화려했습니다. 현재도 그 유산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는 오랜 세월 동안 스페인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은 바로 이슬람교를 믿었던 무슬림들에 의해 오랜 세월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된 무슬림은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여 8세기 경에는 이베리아 반도로 넘어와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해버렸습니다. 기존에 살고있던 기독교인들은 무슬림을 받아들이고 개종하거나 피레네 산맥 근처로 도망가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를 믿었던 유럽 국가와, 잔존한 스페인 기독교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되찾는다 (re-conquest)라는 뜻의 레콘키스타(Reconquista) 라고 불렀습니다.
8세기부터 시작된 레콘키스타는 무려 800여 년간 지속되어 1492년 최종적으로 레콘키스타가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는 800여 년 동안 무슬림의 지배를 받았다는 말이며, 레콘키스타도 8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로 치환하면 통일 신라시대부터 조선이 건국될 때까지의 시기를 의미할 만큼 긴 역사입니다.
레콘키스타의 역사는 스페인 국기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스페인 국기에 새겨져있는 방패의 오른쪽 위에는 왕관을 쓴 사자가 있습니다, 레온 왕국의 상징입니다. 레온 왕국은 무슬림을 피해 숨은 기독교인들이 피레네 산맥 근처에 레온이라는 지역에서 세운 기독교 국가입니다.
황금색 사슬 문양은 현재 바스크 지방에 세워졌던 나바라 왕국을 상징하는데, 이는 용맹하던 나바라 왕국의 군주 산초 7세가 전쟁터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황금색 사슬을 기념하기 위해 이 문양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레온, 나바라가 레콘키스타의 토대를 세웠다면 레콘키스타를 완성한 것은 아라곤, 카스티야 왕국입니다. 카스티야 왕국의 상징은 성이며, 아라곤 왕국의 문장은 황금색 바탕의 붉은 줄무늬입니다.
아라곤 왕국은 현재의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FC바르셀로나의 주장 완장에는 아라곤 왕국의 황금색 바탕의 붉은 줄무늬 문양이 새겨져 있어 선조들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492년 역사적인 레콘키스타가 완성되고 스페인 기독교인들은 무슬림들로부터 800년간 뺏겼던 조국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남부의 도시 그라나다가 함락되었고, 이를 상징하기 위해 그라나다를 뜻하는 석류 모양도 국기에 추가되었습니다.
마지막 백합 문장은 현재의 스페인 왕가를 의미하는 부르봉 왕가의 상징이며, 2014년 즉위한 펠리페 6세 역시 부르봉 왕가의 핏줄입니다.
스페인의 상징적인 국가들이 들어가 있는 국기 문양의 옆에는 양쪽의 두 기둥이 문양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 문양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불립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의하면 헤라클레스는 스페인 남부의 지브롤터 해협의 양쪽 끝에 세계의 끝임을 알리고자 두 개의 기둥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이 기둥에는 본래 Ne Plus Ultra(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라는 경고문을 새겼다고 하는데, 16세기 스페인 왕 카를 5세는 이를 보고, Ne를 빼고 Plus Ultra(보다 더 멀리) 로 바꾸었습니다.
800년간의 처절한 독립운동 끝에 레콘키스타를 완성한 스페인 사람들에게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세계의 끝이 아닌,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대항해시대의 표석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