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은 준비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설레게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 여행', '관광지를 찍고 옮겨가는 여행' 을 하고 있습니다. SNS와 블로그를 통해 미리 알아본 관광지에 가서 수도 없이 사진을 찍고, 외국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대신 스마트폰을 꺼냅니다.
누군가는 해외 여행을 계획하며 일정을 소화하듯이 시간 단위 시간표를 만들기도 합니다. 많은 여행자들에 의해 이미 검증된 맛집, 00 도시 맛집을 검색하여 찾아보고 가면 식당에서 비슷한 글을 찾아보고 온 수 많은 한국인 여행객들과 마주치기도 합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구글맵도 없이 종이 지도에만 의존하여 여행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행 불모지인 중동과 아시아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었고, 안전하게 갈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1950년대~1970년대 유럽과 미국의 청춘들이 떠나던 낭만 여행, ‘히피 트레일(hippie trail)’ 이 바로 그런 여행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부터 반전 무드와 함께 유럽을 중심으로 히피문화가 피어납니다. 안보, 정치 그리고 전쟁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를 말하고 자연을 벗삼으며, 행복하고 편안한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어떻게 보면 조금 나이브 하기도 한 청춘들이 서로에게 꽃을 꽂아주었습니다.
히피들로부터 시작된 이런 분위기는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고, 미지의 세계였던 중동과 아시아를 향해 떠나는 히피 여행으로까지 발전하였습니다. 청춘들은 그 전에 획일화된 여행 문화에서 벗어나, 아시아를 직접 몸으로 느끼고자 하였습니다. 저마다 돈을 모아 작은 폭스바겐이나 툴툴거리는 중고 미니 밴을 마련하여 아시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배낭여행의 선배들인 셈이죠.
히피 트레일의 루트는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출발하여 서아시아, 중동을 지나 인도로 가거나, 동남아시아로 가는 경로입니다. 이스탄불(터키) - 테헤란(이란) - 헤라트(아프간) - 칸다하르(아프간) - 카불(아프간) - 인도 - 네팔 - 동남아시아로 가는 길이 있고, 터키 - 시리아 - 요르단 - 이라크 - 이란 -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도 있었습니다.
여행객들은 현지인들과 어우러지는 여행을 좋아했고, 낭만을 쫓았습니다. 주변의 현지인에게 물어 가장 값싼 숙소에서 잠을 잤고, 때로는 그냥 버스 근처 들판에 누워 잠을 자기도 하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광활한 산맥에서 바퀴가 터지기도 하고, 페르시아의 이름 모를 호수에서 쉬어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연애와 섹스과 대마초를 달고 살았고, 동방이라는 환상을 향해 달려가며 열반(Nirvana)을 추구했습니다.
히피들은 돈이나 여행 계획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가장 싼 음식을 먹고, 잠을 잘 곳이 없으면 머리를 대는 곳이 곧 숙소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구글 통역기도, 구글 맵도, 당장 무엇을 검색해야 할 스마트폰도 없었습니다. 여행은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1년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히피들의 끝을 모를 이 자유로운 여행은 중동의 정세가 불안정해지기 전인 1970년대를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1975년 레바논 내전, 1979년 이란혁명, 1979년 소련-아프간 전쟁,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등으로 인해 중동 정세가 불안해졌고, 여행객들의 입국이 금지되기 시작했습니다. 파키스탄과 인도도 국경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로 긴장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1970년대를 끝으로 히피 트레일은 사라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몇 몇 용감한 여행객들은 유럽에서 스쿠터나 미니 밴을 타고 출발하여 아시아를 가로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PEACE, LOVE를 말하던 히피 문화가 마이너리티로 전락했고,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죠. 히피 트레일은 배낭 여행객들에게는 동화와 같은 이야기이며, 죽기 전에 경험하고 싶지만 경험할 수 없는 낭만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