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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재를 구하는 방법, 재주와 덕을 겸비한 '재덕론(才德論)'

by 지식노트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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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수천년 역사의 흥망성쇠를 통해 나라를 다스리는 제왕학과 인물을 다스리는 용인술을 통해 제국의 발전을 꾀해 왔습니다. 북송(北宋) 중기의 정치가이자 사학자인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은 제왕학의 교과서로 알려진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저술하며 '재덕론(才德論)'을 펼쳤습니다.

"재덕(才德)을 겸비하면 성인(聖人), 재주도 없고 덕도 없으면 어리석은 자(愚人), 덕이 재주를 능가하면 군자(君子), 재주가 덕을 능가하면 소인(小人)이다."

사마광의 이 같은 분석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좌구명(左丘明)이 지은 역사서 '국어(國語)'에 기록된 다음 일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진(晉)나라의 막강한 가문의 수장이었던 지선자(智宣子)가 아들 지요(智謠)를 후계자로 삼고자 하였습니다.그러자 친족인 지과(智果)가 "지요는 훌륭한 외모, 출중한 무예 실력, 갖가지 기예, 문장과 총기 등의 다섯 가지 장점이 있으나 포용력이 부족하여 각박하다는 단점 때문에 누군들 그와 잘 지낼 수 없다"며 "지요를 후계자로 삼으면 지씨 일족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다"라고 반대했습니다.

자치통감

그러나 지선자는 결국 아들 지요에게 권력을 계승했습니다. 당시 진나라는 여섯 집안이 통치하고 있었고 지요가 다스리는 가문은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지요는 가문의 세력과 자신의 능력을 믿고 두 가문을 멸문시킵니다. 그러자 지요는 결국 지과의 지적대로 포용력이 부족해 자신의 가문마저 멸문지화로 이끕니다. 지요를 두려워한 나머지 조(趙), 위(魏), 한(韓) 세 가문의 연합 반격으로 결국 지씨 일족은 멸망합니다.

사마광은 "지요의 멸망은 재주만 많고 덕이 부족했기 때문(才勝德)"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는 "재주와 덕은 다른 데도 세상 사람들은 이를 구별 못 하고 모두 훌륭하다고 한다. 이는 사람을 잘못 보는 것이다. 매사를 분명히 하고 총명하며, 강하고 과단성이 있는 것은 재주다. 반면 공정하고 정직하며 온화한 것은 덕이다. 재주는 덕을 보좌하는 것이고 덕은 재주를 통솔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사마광은  "소인은 그 재능으로 맡은 자리에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 큰 해가 되지만, 우인은 나쁜 일을 하려 해도 지혜가 따라주지 않아 큰 해가 되지는 않는다.”라며 사람을 쓰려면 차라리 우인을 쓰라고 덧붙였습니다.

천하의 간웅 삼국지(三國志)의 조조(曹操)도 항상 재능을 우선시했습니다. 인재에 욕심이 많았던 조조는 천하의 인물들을 구하기 위해 세 차례 '구현령(求賢令)'을 내렸습니다. 조조는 도덕성 등을 따지지 않고 오직 재능만 보고 인재를 발탁하였고 결국 능력 위주로 발탁한 당대의 인재 사마의(司馬懿)의 후손에 의해 위나라는 멸망합니다. 삼국지의 주인공도 조조에 비해 용맹도 지략도 부족하지만, 사람을 품는 포용력이 컸던 유비(劉備)인 것은 재(才)보다 덕(德)을 우위에 두는 제왕학의 기본을 따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인재의 등용 기준은 달라집니다. 당 태종이 다스리던 중국 역사의 황금기를 담은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당 태종(唐太宗)의 장자방으로 꼽히는 위징(魏徵)은 조언합니다.

태종이 “좋은 사람을 쓰면 선한 사람들이 모두 고무되고, 악한 자를 잘못 쓰면 선하지 않은 자들이 다투어 나아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위징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을 구할 때 반드시 품행을 살펴야 합니다. 그 선함을 알고 쓴다면 설사 업무에 서툴러도 능력이 미치지 못할 뿐 큰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를 잘못 쓰면 일을 잘한다 하더라도 해로움이 더 많습니다. 난세에는 재능만 추구하여 행실을 돌아볼 여유가 없지만, 태평한 때에는 반드시 재능과 품행을 모두 갖춘 자를 써야 합니다.”

위징은 난세에는 재능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나 나라를 평정하고 난 뒤에는 반드시 품행을 갖추고 재능이 있는 자를 써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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