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극을 보다보면 중국과 일본에 머리를 밀고 양 옆에만 머리를 남기거나, 머리의 앞 부분을 모두 밀어 뒷부분만 남기는 특이한 헤어스타일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헤어스타일을 중국에서는 '변발'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촌마게'라고 하는데요, 이들은 왜 이런 특이한 머리를 하게 되었을까요?
이 두 가지 헤어스타일은 모두 전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 북방민족의 전통 헤어스타일입니다. 물이 귀한 유목민들의 환경 특성상 머리 감기가 어려웠고, 긴 머리를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릴 때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에 이런 머리를 하고 다녔습니다.
또한 식량을 얻기 위해 약탈과 전쟁이 일상이던 민족이었기에, 투구를 오래 쓰면 머리가 빨리 뜨거워졌습니다.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온 효과가 있는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고, 체온을 빨리 떨어뜨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을 만주족이 다스리던 청나라 이후의 배경을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변발을 한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몽골족이 지배하던 원나라 시절에도 중국을 비롯해 고려에도 변발 스타일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촌마게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15~16세기 일본은 센코쿠시대였습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만큼이나 끊임없이 내전이 일어나던 시기인데 사무라이들이 일본 열도를 횡행하던 시대였죠.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쟁 용병으로 활약하던 시기였고, 사무라이들 역시 햇볕으로 인해 지나치게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머리 윗 부분을 밀고, 양 쪽만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센코쿠 시대가 끝나고 평화가 도래했지만, 일부 사무라이들은 '나는 언제든지 전쟁에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 라는 일종의 허세를 부렸기 때문에 '촌마게'는 그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그 유행을 이어갔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은 인륜을 파괴하는 야만의 행위였습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단발령(斷髮令)을 거부한 수많은 사무라이들이 할복 자살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1895년 고종의 단발령 칙령은 전국 팔도 유생들의 빗발치는 상소와 시위를 불러왔습니다.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던 시절 변발 강요는 한족들에 의해 '오랑캐의 풍습을 강요한다'고 인종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