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계기로 자폐 스페트럼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영우의 실제 모델은 세계적 동물학자인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교수입니다. 1947년 보스톤에서 태어난 템플은 생후 6개월 무렵부터 누군가가 자신을 만지면 몸이 경직됐고, 4살이 될 때까지 말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는 그 자리에서 자폐증 진단을 내렸습니다.
“자녀분은 아마도 영원히 말을 못 할 겁니다. 제대로 된 치료 과정이 있을지도 의문이네요. 특수시설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영화 ‘템플 그랜딘’(2010)
그녀의 부모는 템플 그랜딘을 자폐증 아이들을 위한 특수시설에 보내라는 의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자신이 집에서 직접 공부를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모님의 눈물나는 헌신으로 템플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일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늘 템플에게 “넌 특별한 아이”라며 용기와 자존감을 심어줬고, 템플은 자폐인에 대한 오해와 차별을 딛고 자신만의 세상을 넓혀갈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템플은 평생의 은사를 만납니다. 여러 역경과 아이들의 괴롭힘을 견뎌내고 진학한 고등학교에서 과학 선생님 칼락입니다. 칼락은 템플이 부족한 아이가 아니라 남과 다른 아이라는 걸 인지시켜주었고 스승의 도움으로 템플은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뒤 1975년 동물학으로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1989년에는 동물학으로 일리노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자폐증에서 비롯된 천재성을 가진 템플의 주요 관심 분야는 ‘동물’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말’과 ‘소’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진 템플은 고등학교 마굿간에 있는 말을 돌보며 정서적 교감을 키워 나갔습니다.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의사소통 구조를 가진 사람들보다는, 단순하지만 명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동물이 자폐증 환자인 그녀와는 더 잘 맞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던 어느날 방문한 소 농장에서 도살장으로 걸어가며 흥분하고 울부짖던 소가 몸을 압박하는 ‘보정틀’ 속에 스스로 들어가선 차분해지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와 선생님과 함께 자신을 위한 보정틀을 만들었다. 템플은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거나, 큰 압박을 느낄 때 스스로 보정틀 안에 들어가서 온몸을 밀착시키며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그랜딘이 만든 이 보정틀 ‘허그 머신’은 자폐인용 압박치료기로 전세계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템플은 자신을 비롯한 자폐인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동물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세상을 언어와 문자로로 이해하지만 동물은 그림으로 이해합니다. 동물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슬라이드가 하나씩 지나가는 장면 같다고 합니다. 동물은 디테일한 차이를 자세히 볼 수 있으나 현상을 일반화하여 이해하는 두뇌가 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동물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정서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줍니다.
템플은 자폐인 특유의 인식 방법을 강점으로 살려, 가축과 교감하는 동물행동학자가 되었습니다. 템플은 공장식 가축 사육과 도살 방식을 피해 동물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축사와 도축자 통로를 설계했고현재 북미 지역의 도축시설 중 절반 이상이 템플이 개발한 방식의 도축 통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설계도대로 만들어진 축사와 도축 통로는 동물의 시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동물들이 훨씬 편안한 심리 상태에서 도축 과정을 받아들이도록 해줍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업적을 높이 사서 템플을 ‘2010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고, 그녀의 삶은 2010년 영화(Temple Grandin)으로 제작돼,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의 유명한 법정 장면은 템플의 2013년 ‘테드’ 강연 영상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템플은 테드 영상에서 ‘가장 열정을 쏟는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기 위해 제가 하는 일이다. 자폐 성향의 아이를 둔 엄마들이 ‘당신의 책 덕분에 또는 당신의 강의 때문에 저희 아이가 대학을 갔어요’라는 말은 저를 행복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