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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국회

전두환 신군부의 학생프락치 강요(녹화사업)

by 지식노트 2022.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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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신군부는 5워 광주 학살 이외에도 저지른 만행들이 굉장히 많지만, 학생운동권 내부에 스파이(프락치)를 침투시켜 내부 동향을 파악하고 갈등을 유발한 공작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녹화사업이라고 불리는 신군부 보안사령부의 공작 프로젝트는 대학생들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뿌리뽑기 위해, 국군보안사령부에서 실행했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불법 비밀 공작을 의미합니다.

원래 녹화사업은 박정희 정권 당시 산림을 푸르게 만들기 위해 전국적으로 실행되었던 '나무심기 운동'을 뜻합니다.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는 '대학생들 머리에 든 빨갱이 물을 파란 물로 바꾼다'라는 의미로 녹화사업이라 명명합니다. 당시 대학생들이 많이 따랐던 단순히 공산주의나 마르크스 레닌 등 사회주의를 뜻하기도 하지만, 당시 군사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좌경, 용공으로 몰아가던 시대상과도 연관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녹화사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을까요? 

녹화사업의 첫 번째 단계는 강제징집입니다. 2005~2006년 관련 조사를 진행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1980년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은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이 확산되자, 시위 관련 학생들을 학교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강제징집을 동원했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전국계엄확대, 광주항쟁이 연이어 벌어지자 수 많은 학생운동권들이 공수부대와 검경, 합수부 등에 의해 붙잡혔습니다. 

당시에는 학생운동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체적인 세력 중 하나였고, 각 학교 총학생회 지도부들은 군사당국에서는 눈엣가시였습니다. 전국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특수학적변동자' 명목으로 붙잡혔고, 이들은 수개월 간의 불법연행, 불법구금, 구타와 고문 이후 석방된지 며칠만에 군대에 강제로 입대해야 했습니다. 실제 당시 약 4~5개월간 가족들에게 생사도 알리지 못한채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가 석방된지 이틀 내지 사흘만에 논산훈련소로 끌려가야 했던 사례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강제징집 녹화 진실규명추진위


강제징집된 병사들은 군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주기적으로 활동 동향이 보안대에 보고되었고, 서신 검열, 요즘 읽는 책 목록 등이 군내 담당자들을 통해 보안대에 모두 흘러들어갔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학생운동을 하다 징집된 병사들은 다른 병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고, 특히 학생운동에 거부감이 큰 군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괴롭힘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녹화사업의 두 번째 단계는 '학생운동 프락치' 강요입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이었던 최경조는 1982년 청와대에서 열린 전반기 업무보고 자리에서 운동권 출신 입대자들이 군내 반정부 움직임을 보인다는 얘기가 나오자 전두환이 “야 최경조, 너 인마 뭐하는 거야”라고 질책해 녹화사업 계획을 세웠다고 진술했습니다. 보안사는 즉시 대책을 강구했고, 군에 강제로 징집된 운동권 출신 병사들을 보안대로 소환해 '학생운동 프락치'를 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보안대의 방법은 굉장히 악랄했습니다. 강제징집된 인원을 보안대로 불러 약 10일~15일 정도 정신적 고통을 주며 조사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적어내게 하기도 하고, 학생운동 계보와 지휘체계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전두환과 신군부를 찬양하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했으며, 신군부의 정책과 활동에 대해 긍정적인 보고서를 강제로 써내게 하는 등 밤낮없이 글을 작성하게 하였습니다. 

조사 말미에는 보안부대 고위 담당자와 면담을 하는데 이때 바로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게 됩니다. 특별휴가를 줄테니, 다니던 대학교 학생운동 동지들과 접촉한 후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활동계획, 주요 논의사항들을 보안대에 다시 보고하게 하였습니다
. 많은 학생들이 동지를 배신할 수 없다며 버텼지만 고문과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프락치 활동을 강제로 수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학생운동권 내부에서 활동하던 이들을 프락치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차원을 넘어서 내부갈등을 유발하고, 한 사람의 정신적 세계를 파괴하는 아주 악랄한 방식의 기획입니다. 

2005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발표에 의하면 1980년~1984년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녹화사업 피해자는 약 1,000여명에 달하고 당시 6명의 학생들이 보안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은 녹화, 선도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에게 고문과 협박으로 '프락치' 활동을 할 것을 강요했고, 같이 운동했던 민주동지들을 배신하고 밀고할 것을 강제했습니다. 6명의 학생들의 사망과 국회에서의 제지로 인해 녹화사업은 멈췄지만 이미 1,0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의 영혼은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 수 차례 녹화사업의 진상을 밝혀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군 당국의 비협조로 인해 진상을 규명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 녹화사업의 진상이 밝혀지고, 피해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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