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헌이나 옛날이야기에서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다,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건 얼마나 가난한 것일까요? 가난한데 똥구멍이 왜 찢어지는 것일까요?
조선시대 농민들이 지금보다 말도 안 되는 어려운 삶을 살았다는 것은 다들 당연히 인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한 해의 농사로 다음 해에 먹고살았기 때문에, 수해, 가뭄 등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치면 당장 겨울부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농사를 망치면 당연히 닥치는 대로 주위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먹어서 자식들의 굶주림을 해결해야 했겠지요.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초근목피(草根木皮)입니다.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라는 말로, 배고픈 백성들이 나무껍질을 벗겨서 먹거나 풀뿌리를 캐서 먹던 처절함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캐 먹던 춘궁을 견디기 위한 대표적인 구황작물(흉년이 들어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작물) 가운데
하나가 솔잎이었습니다. 고구마, 감자 등 구황작물마저 떨어지면 당시 조선 산간 곳곳에 있던 소나무 솔잎을 따서, 이를
빻아 가루를 낸 다음 물에 타 먹으면 멀건 미음이 되었습니다.
솔잎을 빻은 가루는 영양분을 공급하는 대체식품이었습니다. 중종 36년(1541년) 안위와 홍윤창이 간행한 ‘충주구황절요(忠州救荒切要)’도 “솔잎은 먹을 수 있으니 연명에 도움이 된다. 풀죽에 솔잎가루를 섞어 먹으면 (건강에도) 훨씬 좋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나무 껍질 죽과 솔잎 미음을 먹음으로 인한 큰 부작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심각한 변비를 유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배고픈 시기에 텁텁한 맛이야 누가 상관했겠느냐만, 나무껍질과 솔잎은 대부분 인간이 소화할 수 있는 성분이 아니었습니다.
내장 기관을 거치며 소화되지 않고 굳은 나무껍질은 당연히 탈이 나고 심각한 변비를 일으켰습니다. 딱딱한 나무껍질 변을 누기 위해 힘을 주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라는 말이 탄생했습니다.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은 참으로 서럽고 애달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