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계 천하에는 절대강자 ‘평냉파’와 ‘함냉파’가 있습니다. 슴슴한 국물의 평양냉면과 매콤한 양념의 함흥냉면으로 취향이 갈리는데, 간이 세고 자극적인 맛을 좋아한다면 ‘함냉파’로 가는게 옳은 선택입니다.
함흥냉면은 북한 함흥지역에서 즐겨먹던 함경도식 국수의 변형입니다. 이북에서는 감자가 흔하고 많아 감자 녹말가루르 면을 뽑아서 '농마국수'라는 것을 많이 먹었습니다. 또한 북한은 가자미가 흔해 가자미 고명을 양념에 무처 국수 위에 고명으로 얹어 먹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흥남 철수를 계기로 함경도 지방 실향민들이 서울 오장동 일대에 대거 정착했습니다. 흥남은 조선시대부터 명태 등 건어물의 주산지였으니 흥남 사람들은 서울에서도 자연스럽게 건어물 관련 일에 종사했고, 오장동에는 자연스럽게 국내 최대 건어물 시장인 중부시장이 형성됩니다.
오장동에 모여살던 흥남 사람들은 북한에서 먹던 농마국수를 한국식으로 변형하여 먹기 시작합니다. 남한에서 흔한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반주하고, 북에서 먹던 가자미 고명 대신 많이 잡히는 명태나 홍어를 양념하여 고명으로 얹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장동 함흥냉면의 시초입니다.
오장동 함흥냉면 거리는 현재 2곳의 가게만 남아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6.25 직후에는 20곳에 이를 정도로 함흥냉면 거리가 번성했으나 세월이 흐르며 자극적인 음식들이 유행하자 하나 둘 폐업을 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게들은 1950년대부터 역사를 이어온 '흥남집'과 '오장동 함흥냉면' 두 곳입니다.
오장동 함흥냉면의 대표메뉴는 회 비빔냉면입니다. 말 그대로 비빔냉면 위에 염장한 홍어를 양념하여 고명으로 얹은 냉면입니다. 회 비빔냉면을 주문하면 회색 고구마 면발 위에 빨간 고명에 달걀과 채 썬 오이를 얹은 냉면이 나옵니다. 일반 비빔냉면과 달리 간장 베이스의 국물이 자작하게 고여있어 냉면의 감칠맛을 더해줍니다. 회 비빔냉면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고기 비빔냉면도 구성은 비슷합니다. 양념한 홍어고명 대신 얇게 썰어낸 소고기 편육에 붉은 양념장을 올려서 주면 그것이 고기 비빔냉면입니다.
이북에서는 이냉치냉으로 겨울에 먹는 음식이라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냉면은 여름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이제 장마도 끝나고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오장동 함흥냉면 거리에는 70여년의 세월을 버텨 아직까지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두 군데의 함흥냉면 가게들이 있습니다, 무더위에 오장동 한 번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