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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국회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알베르 카뮈)

by 지식노트 20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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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는 평론집『반항하는 인간』(L’Homme révolté; 1951)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Plutôt mourir debout que de vivre à genoux.”

알베르 카뮈의 말이 약 반세기도 넘게 지난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다시 회자됩니다.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대통령후보)는 2021년 12월 30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문재명 집권세력에 맞서 정권 교체 투정에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는 차라리 서서 죽겠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당시 공수처가 야당 대통령 후보인 윤 후보 본인과, 부인 김건희씨 그리고 여동생의 통신기록을 조회한 데 대한 강경한 반발의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정치권에서 흔히 벌어지는 메시지 싸움이라고 보여집니다. 재밌는 점은 그 다음 대응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고(故) 김근태 의장을 따랐던 더불어민주당내 'GT계' 의원들이 집단으로 성명을 발표합니다. 성명의 골자는 '윤석열은 고 김근태 의장의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입니다. 대표로 성명 발표를 진행한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이라는 말은 고(故) 김근태 의장이 민주화 투쟁중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23일간 불법 구금된 상황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한 사실을, 1985년 12월 19일 서울지법 118호 법정에서 증언하며 한 말이라고 언급합니다.

김근태 의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전기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때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라는 노래를 뇌까렸다"고 합니다.

국민의힘 선대위는 이에 대해 즉시 반발했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언급한 발언은 알베르 카뮈의 1951년 평론집 '반항하는 인간'에서 발췌한 것이며 특정인의 발언, 투쟁과 저항의 발언을 더불어민주당이 독점하려 하는 것은 지독한 오만이라고 말합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고 김근태 의장의 발자취와 투쟁의 역사와 윤석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을 가만히 비교해봅니다.

"무릎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기를"이라는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보다는 김근태 의장의 삶의 궤적과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특정 발언을 특정 정치세력이 독점하여 사용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국민 정서에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심지어 김근태 의장이 처음으로 언급한 언어가 아닌, 약 반세기 전 프랑스의 소설가가 사용했던 언어입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의 수 많은 해프닝 중 하나로 '언어 독점' 논란도 자연스레 흘러가버렸습니다. 2022년 3월 9일 윤석열 후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는 '검수완박'을 외치며 국회 정국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의 '짐승의 시간'을 증언하며 "무릎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를"을 외쳤던 고 김근태 의장은 작금의 민주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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