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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국회

미국의 어공(어쩌다 공무원) 리스트, 플럼북(Plum Book)

by 지식노트 2022.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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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가, 지방직에 응시하여 시험을 치르고 안정적으로 공무원을 수행하는 늘공(늘 공무원)과 비교되는 임기제, 정무직, 별정직 공무원들을 어공이라고 부릅니다. 대한민국 국회, 정부 기관, 공공 기관 등에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정무직은 약 7,000여개라고 하지만 그 정무직들이 임명할 수 있는 별정직, 무기 계약직 등을 합하면 수 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탄생하는 정부의 몫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제를 운영하는 미국은 정권 교체 때 알박기 인사를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버로잉(burrowing·땅굴 파기)’이라 부르는 알박기 인사를 막기 위해 대선이 있는 4년마다 상원과 하원이 번갈아 ‘미국 정부 정책 및 지원 직책(The United States Government Policy and Supporting Positions)’이란 보고서를 냅니다. 표지가 자두색이어서 플럼북(Plum Book)이란 별칭이 붙은 이 보고서에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옷을 벗어야 하는 ‘어공(political appointee·정무직 공무원)’ 자리와 연봉 등이 모두 기재되어 있습니다.  2020년 미국 대선 때 작성된 플럼북에는 어공 자리가 7935개였다고 합니다.

플럼 북

플럼북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 사령관 중 한 명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당시 민주당의 20년 장기집권을 깨트리고 공화당 출신으로 1953년 미국 대통령에 선출됩니다. 아직 전산시스템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 오랜 세월 민주당이 장악해온 '어공' 자리를 가져오기 위해 아이젠하워는 정부 임명직 리스트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합니다. 아이젠하워 이후 미국 대선이 있는 4년 주기로 미국 의회는 미 인사관리처의 지원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9000여개 직책의 임명방식과 급여, 임기 등을 규정한 책자 ‘플럼북’(Plum Book)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5년 주기로 대선이 치뤄질 때마다 항상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임기제 어공들의 인사 문제로 나라가 온통 시끄럽습니다. 정당이 재집권에 실패하고 야당에게 정권을 넘겨줬을 때는 상대 당이 임명해놓은 인사의 목줄을 잡고 흔드는 현상이 발생하고, 여당이 재집권 하면 당선인의 개국공신들과 캠프 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입니다.

어공의 임기 보장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국정과제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새로운 어공들이 기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또 한편으로는 법적으로 임기를 보장받은 임기제 어공 공무원의 인사를 새로운 대통령이 행사하는 것은 법치의 위반이라는 입장입니다.

왜곡된 인사 관행을 막기 위해 ‘한국판 플럼북(Plum Book)’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제안합니다. 정부 주요 직책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장하되 임명 절차나 조건 등을 투명하게 밝혀 권한을 자의적으로 쓸 수 없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한국판 플럼북이 과연 탄생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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