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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나라의 첫 국민투표, 세종대왕이 실시했다

by 지식노트 2022.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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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의 꽃, 투표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투표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어려서는 학교 반장, 학생회장을 선출하고 대학교 동아리, 학생회 등에서 여러 종류의 투표를 합니다. 아파트 동대표와 주민자치위원회 위원들도 투표로 뽑으며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고 이제는 일주일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뽑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도입된 것은 1948년 일제로부터 해방하며 첫 대통령/부통령 선거를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투표가 조선시대 세종대왕에 의해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 조선시대 조세제도의 문제점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절대자,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 국민투표라니? 게다가 서양에서 최초로 여론조사가 실시된 1824년보다 무려 394년이나 앞선 1430년에 실시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습니다. 왕이 신하들과 의논하여 국가 대소사를 결정하고 일반 무지렁이 국민들은 그저 따라야만 했던 시기에 국민투표는 무슨 말일까요?

그 당시 조선시대 조세제도는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을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관리나 토지 주인이 직접 농작의 상황을 조사하여 보고하면 작황의 손결에 따라 세금을 덜어주거나 면제하는 방식의 세율 규정법입니다. 그 해의 수확물에 따라 불쌍한 농민들의 사정을 살핀다는 취지의 좋은 제도이지만 이론과 현실은 엄연히 달랐습니다

매년 모든 백성의 작황을 파악해야함은 물론이거니와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리와 토호 양반들의 부정부패가 실로  말을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 세종, 조세제도 개선에 대해 국민투표를 부치다

세종은 단순히 탐관오리를 벌하거나 제도를 개선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처방이 불가하다 판단하여 새로운 공법을 도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조선 최초의 국민투표

여러 해의 수확량을 합쳐 평균을 내서 세금의 정도를 결정하는 방식의 '공법'을 시도하고자 하였습니다.그러나 세종은 새로운 조세 제도를 실시 하기 전 백성들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정 시대에 백성들의 의견을 구한다는 것은 정말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리더라고 생각됩니다)

"부자부터 가난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법에 대한 가부를 물으시오, 백성이 원치 않으면 행할 수 없소" 

관료들은 노비, 여자, 어린이를 제외한 백성과 관리를 대상으로 실시된 이 투표에서 호구에 등록된 조선의 총인구 약 4분의1에 해당하는 17만 2,806명이 참여하였습니다.

조사 결과 찬성 57.1%(9만 8,657명) 반대 42.9%(7만 4,149명)으로 찬성률이 높았지만 세종은 공법을 즉시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찬성하는 쪽은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고 반대하는 쪽은 흉년이 잦은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정밀 분석하여 시사점을 도출해내는 킹갓제네럴세종..

□ 세종, 제도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논의하다

세종은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자 관리를 파견하고 조정 내에서도 15년 동안이나 토의를 거쳐 새로운 공법을 완성시켰고.또 이 법을 일부 지역에서만 시범적으로 운영해 실패의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공법이 확정되기까지 17년이 넘게 걸렸고, 1489년 (성종 20년)에 가서야 전국에 걸쳐 확산되어 이후 조선의 과세 기준 원칙으로 적용됩니다.

민생을 돌아보고, 국민투표를 실시 한 뒤, 다시 억울한 백성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 약 20여년에 걸쳐 정책을 결정한 세종대왕 정말로 위대한 군주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투표를 실시한 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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