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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종교

일본의 기독교 색출 방법, 후미에(踏み絵)

by 지식노트 2023.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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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동아시아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한국, 일본 등 왕조국가의 강력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기독교는 하느님 아래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는 종교이니, 공고한 왕조-신분제를 수백년 이상 유지해오던 국가들에 큰 반발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했습니다.

막부시대 일본에선 천주교도를 적발하려고 '후미에(踏み繪)'란 수법을 썼습니다. 기독교를 탄압하며 기독교 시잔(기리시탄)을 색출해내기 위해 백성들에게 예수상이 새겨진 목제 또는 금속판을 밟고 지나가게 했던 것입니다. 성상을 밟으면 배교로 인정했지만 거부하거나 머뭇거리면 체포해 모진 고문을 가하고 죽였습니다. 숨은 기독교도를 뜻하는 '가쿠레 기리시탄'을 찾아내려고 인간의 내면을 메스로 찢어발기는 잔인한 방식입니다.

일본 후미에

일본에 처음로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1594년으로 추정됩니다. 예수회 소속 신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스페인)이 큐슈 남단 가고시마에 들어와 당시 세력가인 오다 노부나가의 승낙을 받고 빠르게 전파되어 갔습니다.

기독교도의 수는 급속하게 불어나 약 100년만에 80만명의 신자들이 생겼고, 이는 당시 전체 인구의 5~6%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기독교는 일본의 통치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고,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독교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지나치게 기독교도가 많아지자 통치에 부담을 느낀 것입니다.

십자가 예수

그 이후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기독교 박해가 이어졌습니다.16~17세기 약 30만명이 넘는 크리스챤들이 순교하였고, 1637년에는 기독교도를 주축으로 한 대규모 주민 폭동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시마바라의 난입니다. 시마바라의 난에서는 1년간 약 3만 7천여명이 정부군에 대항하다 전사하거나 처형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막부가 기독교도에게 가한 박해는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고문의 집합체였습니다. 처음에는 십자가형이나 화형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썰물 때 묶어두고 밀물 때 서서히 익사시키는 방법, 끓는 유황열탕에 삶아 죽이는 방법, 오물을 이용해 서서히 죽게하는 방법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사일런스

이러한 후미에를 다룬 소설이 시대의 명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가 지은 「침묵」이지만 국내에 후미에가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영화를 통해서입니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하고 리암 니슨이 주연한 영화 '사일런스'는 1600년대 초반 일본 선교에 나선 포르투갈 출신 가톨릭 신부 3명이 박해를 받고, 배교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영화에서 막부는 기독교를 믿게 된 마을의 주민들에게 '후미에'를 실시하고, 머뭇거리거나 성상을 밟지 못하는 자들을 모두 잔혹하게 죽입니다. 신자들은 차마 성상을 밟지 못하고 신앙을 고백하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순조 때 5개 가구를 1개 통으로 묶은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악용해 이웃 간에 천주교도가 있는지 감시하고 밀고하게 했습니다. 천주교도가 적발되면 이웃끼리 연좌제로 처벌했지요. 김훈의 장편소설 '흑산(黑山)'은 천주교를 믿었다가 고문 끝에 순교와 배교를 거치며 삶과 죽음의 길이 엇갈린 정약용 형제의 고뇌와 절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사일런스, 박해 장면

현대에 와서 후미에는 정치, 사회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미국에서 2차대전 직후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되며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기도 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소련과 연관되거나 사회주의를 옹호하면 '소련과의 내통', '공산주의자'라는 명목으로 매장당하였습니다.

이러한 후미에는 21세기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누군가의 사상을 검증한다든지, 어떤 집단 내에서 반대의견을 가진 자를 색출하기 위한 행위를 일컫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너 빨갱이냐?'라 통칭되기도 하죠.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연달아 “국가에 제일 중요한 것은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이념”이라고 언급하거나,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준동하고 있다”며 철이 지나고 이제는 썩은 물이 된 반공 이데올로기를 다시금 작동시키고 있습니다.

2023년,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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