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만 해도 지금의 잠실은 현재의 광진구 자양동과 붙어있는 강북지역이었습니다. 잠실은 상류의 많은 흙이 쓸려 내려와 땅이 비옥했습니다. 거름 없이도 뽕나무가 잘 자라 잠실(蠶室)로 지칭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잠실 일대는 예로부터 홍수가 자주 나던 지대였습니다. 조선 중종 재임시절(1520년) 대홍수로 인하여 잠실 지역은 강북에서 떨어져 섬이 됩니다.
이 샛강을 새로 생긴 하천이라 하여 새내, 신천이라고 불렀습니다. 수심도 별로 안 깊어 배 없이도 건널 수 있고, 비가 안 오면 거의 건천이 되어 걸어다닐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강물이 넘쳐서 지류가 생겼는데, 이 샛강을 신천이라고 한다. 가물면 걸어서 건널 수 있고, 물이 불면 두 줄기 강물이 되어 저자도 아래에서 한 줄기로 합쳐진다. 중종 23년(1528)에 군대를 동원해 돌을 날라다가 쓸려나가는 강둑을 보호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동국여지비고> 산천조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1925년 '을축년 대홍수'가 발생하며 상황이 달라집니다. 홍수가 너무나 큰 나머지 한강의 본류가 바뀌어버렸습니다. 샛강에 불과하던 신천강이 한강의 본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또한 누에를 기르는 집이라닌 잠실의 뽕나무밭 역시 다 쓸려 내려가고, 토양 자체가 모래밭이 되어 황폐해지고 버려진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잠실이 1970년 박정희 정부 강남개발에 들어가면서 강남에 편입시키게 됩니다. 송파강의 물길을 막아 매립하고, 잠실도 북부를 깎아 신천강의 폭을 넓히는 것이었습니다. 1971년 잠실이 강남에 편입되면서 송파강의 일부가 호수로 남은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알고있는 석촌호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