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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종로, 성균관을 몰락시킨 일본의 식민통치 방법

by 지식노트 2022.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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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1910년 8월~1945년 8월)는 1910년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8·15 광복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하의 식민통치 시기를 일컫습니다. 식민통치란 그 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을 차례로 장악하는 일인데요 일본의 식민통치는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우리나라를 공략했습니다.

'각 분야의 대표적인 상징을 대체하고, 대체하는 시설을 바로 그 인근에 세운다' 일본은 조선의 정치, 경제, 군사, 교육(문화)를 말살시키려고 아주 계획적이고 종합적인 플랜을 가지고 접근했습니다. 정말 온 힘을 다해 조선을 대표하는 상징들을 끌어내리려 했죠.

(1) 정치의 상징 대체, 경복궁과 조선총독부

정치를 대체하기 위해 일제는 1916년 조선의 정치 1번지인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웠습니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국가의 모든 대소사가 결정되던 경복궁은 그렇게 조선총독부에 가려지게 됩니다

철거전 조선총독부(뒤에는 청와대)

고층 건물이 없었던 당시, 조선총독부 청사는 압도적으로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건물 내부는 일왕의 상징물로 장식됐고, 총독실은 세종대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위치했습니다 조선 총독은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왕을 대신해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95년 8월 15일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철거되기 전까지 경복궁을 가린채 오랜 세월을 서울의 중심부에 존재했습니다.

(2) 경제의 상징 대체, 종로상권과 명동상권

한양의 상권은 시전과 육의전 등 종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육의전에서 취급하던 물품은 중국산 비단, 국내산 비단, 무명, 베, 종이, 건어물 등 6가지 물품입니다. 당시 어느 정도 화폐로 통용되던 비단, 군대에 가는 대신 베를 세금으로 내는 군포 등이 모두 육의전에서 거래되었습니다.

또한 한양의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생필품은 종로와 청계천 주변의 시전에서 거래되었습니다. 종로에서 양반과 일반 백성들 모두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품들을 구했으니, 명실상부 경제의 중심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일제는 기존의 종로상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명동상권을 육성합니다. 본래 명동은 남산골이라 하여 몰락한 양반이나 아직 벼슬을 하지 못한 선비와 무반들이 주로 사는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명동과 충무로 일대를 신흥상권지역으로 발전시키면서 명동은 부흥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조선 최초의 백화점인 미츠코시 백화점이 세워지고(현 신세계본점 자리) 조선 최초의 은행이자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명동 한복판에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일제가 물러간 지금에도 명동은 전국 상권임대료 1위를 차지하며 대한민국 상권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종로는 공공기관, 대기업 본사 등이 점점 종로 거리를 채워가면서 현재는 상권지역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3) 군대의 상징 대체, 남영동 군영과 일본 집단주둔지

본래 용산과 남영동 일대는 조선시대 군영이 있던 동네입니다. 지형상 용산을 지나면 남산이 나오고, 남산을 지나면 바로 남대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남영동이라는 어원도 남쪽의 군영, 남영(南營)입니다.

일제는 조선의 상징적인 군영, 남영을 해체하고 일본군을 대규모로 남영동 일대에 주둔시킵니다. 또한 일본군 및 그들을 따라온 일본 가족들을 위해 대규모 이주촌을 만들어 남영동 일대를 일본인 집단 거주지로 탈바꿈시켜버리죠.

무서운 일본군들이 해방 후 모두 남영동을 떠났지만여전히 남영동은 무섭고 악랄한 자들의 손에 남겨졌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 시절 수 많은 민주 열사들이 끌려가 지독한 고문을 받았던 1987년까지 운영된 남영동 대공분실은많은 애국자들에게 고통을 주었습니다

(4) 교육의 상징 대체, 성균관과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조선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은 모두가 떠올리듯이 성균관입니다. 고려말 건립된 성균관은 약 6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며명실상부 한국인들의 민족정기와 교육을 상징하는 대표적 기관입니다

성균관 명륜당

일본은 성균관으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민족성과 교육 철학을 말살시키려 했습니다. 일제는 경성제국대학을 의도적으로 성균관 옆에 건립하여 교육의 상징을 대체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전통적인 교육과 문화를 장악하기 위해 성균관이 있는 명륜동 인근의 동숭동에 독일 교육제도를 모방한 제국대학의 경성지부인, 경성제국대학을 건립합니다. 이공학부, 의학부, 법문학부를 갖춘 제국대학을 건설하고 일제강점기에 성균관은 경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격하되었고 1943년에는 그마저 폐교당해버리고 맙니다.

경성제국대학도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해방 후 경성제국대학은 국내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의 전신이 됩니다.서울대는 1975년 서울대 종합화 계획에 따라 종로구 동숭동에서 현재의 관악 캠퍼스로 이전합니다. 동숭동 캠퍼스에는 서울대 의대 등이 현재도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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