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해외축구 선수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받습니다. 이적료를 몇천억씩 줘가며 다른 클럽의 유명한 선수를 데려오는데,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을 정도의 금액입니다.
축구의 역사는 장구하지만, 축구 선수들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선수들은 축구로 큰 돈을 벌기 어려웠습니다.
과거 선수들이 구단의 소유물처럼 취급되던 시기에는, 계약 기간이 끝난 선수도 자기 마음대로 이적이 불가능했습니다. 계약 중인 선수는 물론이고, 계약이 끝난 선수들 역시 원소속팀의 허가가 있어야만 다른 팀과 입단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현재 시점에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갑질'이지만, 그때 그 시절엔 가능했습니다.
선수들이 현재의 권리를 가지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은 벨기에의 축구 선수 장-마크 보스만입니다. 보스만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선수들은 '자유 이적'의 개념을 제대로 알 기회조차 없었을 지 모릅니다.
1990년 벨기에 프로 축구 주필러(1부) 리그에서 미드필더로 뛰던 장 마르크 보스만(당시 26살)이란 선수가 있었습니다. 보스만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소속 클럽(RFC 리에주)이 기존 급료를 4분의 1로 깎는 재계약을 제안하자 이를 거절하고 프랑스 리그 덩케르크(영화로 유명해진 그 덩케르크) 구단으로 이적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리에주가 거액의 이적료(50만 유로)를 요구한 데다 당시 존재하던 외국인 선수 쿼터 제한(팀당 3명)까지 걸리게 되자 덩케르크는 영입 의사를 철회합니다. 당시엔 계약이 끝난 선수라도 원소속 클럽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적할 수 없었습니다.
보스만의 행동에 앙심을 품은 리에주는 보스만에게 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리고 그의 급여를 75%나 삭감해 버립니다. 이를 두고 후에 보스만은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클럽에 포로로 잡혔었다”라고 하였죠.
프랑스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꿈꾸던 보스만은 순식간에 월급 100만원도 안되는 무계약 선수 신분으로 전락했고 당연히 경기 출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보스만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럽사법재판소에 리에주를 제소했습니다. 보스만은 소송과 동시에 팀에서 쫓겨났고, 프랑스와 벨기에 하부리그를 전전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갑니다.
기나긴 법정 공방 끝에 1995년 12월15일 재판소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리며 보스만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판결 취지는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1) 소속팀과의 계약이 만료된 선수는 자유롭게 팀을 떠날 수 있다. 따라서 소속팀은 그가 이적하는 팀에 이적료를 요구할 수 없다.
2) EU 국적 선수는 EU 가맹국 리그로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다. 즉, EU 가맹국 리그에 소속된 클럽은, EU 국적 선수를
외국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즉, 모든 EU 가맹국 리그의 클럽들은 EU 국적 선수를 무제한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판결이 주목받은 것은 보스만이 단지 구단만이 아니라 유럽축구연맹(UEFA)과 벨기에 축구협회까지 한꺼번에 유럽 사법 재판소에 고소했기 때문입니다. 보스만은 UEFA가 정하고 축구협회와 구단이 시행하고 있는 이적 규정이 상급 기관인 EU(당시 EC)가 보장한 직업 선택과 EU내 이주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이 인용된 것입니다.
이 판결은 축구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산업혁명급의 변화였습니다다. 이 판결로 수 많은 선수들이 FA 계약을 통해 큰 돈을 벌게 되었고, 소속 구단의 허락 없이 이적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장-마크 보스만의 삶은 달라진 게 없었으니, 26세에 소송을 시작한 보스만은, 판결이 난 1995년 31세가 되었고 프랑스와 벨기에의 하위 리그를 전전한 선수 생활은 이미 끝이 났습니다. 보스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선수 이적의 자유를 입증한 소송의 당사자가 정작 자신의 이적에는 아무런 혜택도 얻지 못한 셈이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보스만 룰’로 불리는 이 판결을 축구계가 수용하면서 선수들은 비로소 자유 이적이 가능해졌고 구단이 독점하고 있는 자본과 영향력이 선수들에게도 분배되기 시작했습니다. 선수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오른 것은 당연히 일입니다. 축구로 불멸의 족적을 남긴 메시나 호날두, 흥민도 모두 보스만에게 빚을 진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