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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종교

켈트족의 사제, 디아블로의 드루이드(Druid)

by 지식노트 2022.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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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나 소설, 영화 등에서 많이 등장하는 드루이드. 한국 남자들에게는 특히 디아블로라는 게임에서 등장하여 매우 유명합니다. 주로 동물이나 식물, 영혼과 원소를 다루는 역할로 흔하게 등장하곤 합니다. 드루이드는 원래 고대 유럽을 지배했던 켈트족의 사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켈트족은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카스피해 동쪽의 대초원에 살던 인종입니다. 기원전 5세기에 세력을 많이 키운 켈트족들은 유럽 전역에 부노하며 큰 영향력을 떨칩니다. 기원전 390년 로마를 공격해 7개월 동안 점령하기도 했으며 마케도니아의 왕을 전사시키기도 합니다. 소아시아 반도까지 진출하여 갈라티아라는 왕국을 세울 정도로 호전적인 민족이기도 했습니다. 

켈트족은 심오한 자연의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켈트 부족들은 드루이드라 불리는 성직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존경받는 이들이었고, 왕조차도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권력이 큰 왕들도 드루이드들에게 의사결정시 조언을 구한 다음 실시하곤 했죠. 드루이드를 죽이면 저주를 받는다고 믿었던 켈트족들은 부족 간 전쟁이 일어나도 드루이들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드루이드들은 전쟁에서 병사들을 치료하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사기를 끌어올리는 주술 등을 실시했습니다. 드루이드의 위상은 마치 인도 카스트 제도의 고급 사제계급 브라만과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드루이드에 대한 많은 역사적 기록이 없는 이유는 그들의 지식이 구전으로 전수되었기 때문입니다. 드루이드들읜 철저한 사제지간 관계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그들의 지식을 전수했습니다. 나중에 로마 제국과 켈트족이 오랜 전쟁을 벌이며 드루이드들이 대부분 사망하였기 때문에, 별도의 경전이나 기록이 없는 드루이드교의 교리는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갈리아족을 점령했던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쓴 '갈리아 전기'에 드루이드의 가르침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갈리아 전기에 의하면 드루이드교의 교리에 의하면 사람이 죽어도 몸만 사라질 뿐 영혼은 죽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환생의 개념입니다. 드루이드는 또한 두건이 달린 흰옷을 즐겨 입었는데, 흰색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색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 수상이 흰옷을 즐겨 입은 것도 그가 드루이드교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드루이드교 의식

드루이드는 세상을 유지하는 힘이 재생과 균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위해서는 다른 생명이 희생되어야 합니다. 갈리아 전기에는 드루이드들이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만든 거대한 사람 모습 바구니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넣고 불태워 죽이는 의식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고대 종교에서는 인신공양과 같은 살아있는 사람들 제물로 바치는 일은 굉장히 흔한 의식이였습니다. 

켈트족의 드루이드들은, 태양신 루, 바다의 신 마나난, 하늘의 신 누아다, 대지의 신 수켈루스 등을 모셨습니다. 여러 신을 동시에 모셔도 되었고, 신들에게 제물을 주기적으로 바쳤습니다. 신들은 제물 바치기를 소홀히 하면 흉년 등의 재앙을 내렸으나 꾸준히 자신들을 잘 모신 신도들에게는 사후 편안히 대우받을 수 있는 낙원으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로마 지배 이전 드루이드교의 성지는 영국의 웨일스 북쪽 모나 섬(지금의 앵글시 섬)입니다. 모나 섬은 켈트족들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켈트인들이 똘똘 뭉쳐 로마 제국에 대항하도록 하는 정치적, 종교적 독립운동본부이기도 했습니다. 106년, 로마의 수에토니우스 장군은 모나 섬을 대대적으로 습격합니다. 습격은 대성공하여 드루이드들은 대부분 학살되었으며 그들의 유물과 유적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드루이드의 지식을 전해주는 늙은 사제들이 모두 죽어버리자 그들도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드루이드교의 비극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을 시작으로 기독교가 전 유럽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4세기와 5세기를 걸치며 켈트족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고, 이는 켈트 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며 다양한 제물과 인신공양들을 요구하던 그들의 신과 다르게 예수는 관대하고 자비로운 신 그 자체 였습니다. 기독교는 빠른 속도로 켈트족들에게 포교되기 시작하였고, 문자로 된 성경으로 인해 그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어 쉽게 퍼져나갔습니다. 결국 약 200여년이 지난 7세기 이후 드루이드교는 영국과 아일랜드 지방에서도 거의 소멸되기에 이릅니다.

켈트족의 드루이드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영국 사회 곳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국과 웨일스에서는농부들이 흉년이 들면 산이나 계곡에 빵을 던지며 풍년을 기원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시레 같은 것인데요, 드루이드교의 오래된 풍습이기도 합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 아서 왕 전설에도 드루이드교의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랜슬롯, 가웨인 같은 기사들은 태양이 가장 빛나는 정오가 되면 힘이 몇 배나 강해지고 밤이 되면 힘을 잃는데 이는 켈트족들이 숭배하던 태양신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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