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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술

한국인이 출산 후,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이유

by 지식노트 2022.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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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아이를 낳거나, 생일이 되면 꼭 '미역국'을 챙겨 먹습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미역국을 먹는 것은 좋지만 왜 우리는 항상 미역국을 먹어왔을까요? 한국 사람들이 미역국을 먹기 시작한 것은 무려 천 년이 넘습니다. 이제는 한국인의  전통 음식이라고해도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의 옛 문헌에 우리나라의 미역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당나라 때 서견(徐堅·659~729) 등이 지은 백과사전 ‘초학기(初學記)’에 고래가 새끼를 낳고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역을 뜯어 먹는 것을 보고 고려인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한국인들은 고래가 출산을 하고 미역을 뜯어먹는 것을 보고 미역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한반도에 고래라니? 라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한반도, 특히 동해에는 과거 고래가 아주 흔했습니다. 한반도 지형이 확정된 것은 약 1만 년 전인 신석기시대쯤 부터라 하며 그때쯤 한반도 주변 바다에는 고래가 많았다고 합니다.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 중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수십 마리의 고래가 새겨져 있습니. 신석기에서 청동기 시대 작품으로 알려진 반구대 암각화에 수십 마리 고래가 새겨졌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이 고래를 면밀하게 관찰, 연구했다 것과 다름없습니다

고대인들은 고래를 보며 새끼를 갓 낳은 고래가 미역을 먹는다는 사실도 알아냈을 것이고, 미역이 식용 해조류임도 알아냈을 것입니다. 만약 이를 토대로 역순해보면 우리 조상들은 대략 신석기시대부터 미역을 식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미역국

놀랍게도 현대 과학이 밝혀낸 미역의 효능은 칼슘과 요오드가 풍부해 어린이, 산모에게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고래가 옳았던 것이죠. 현대 과학자들이 산모의 미역국 효용을 증명했듯이 미역은 출산 후 상처를 아물게 할 뿐만 아니라 모유 분비를 촉진하고 피를 맑게 하는 효과가 탁월해 일찍부터 산모의 영양제로 애용되었습니다.

기원전 고대부터 존재해왔던 천년왕국이자,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수도 경주는 바다 가까이 있었습니다. 신라왕실의 식자재에는 미역을 비롯한 해산물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미역은 왕실을 비롯하여 귀족과 평민 나아가 어민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애용하는 식자재가 되었고, 이러한 풍속은 고려 왕실을 거쳐 조선왕실에 전해졌습니다. 

조선왕실의 경우, 왕비는 물론 후궁도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었습니다다. 기록에 의하면 영조를 출산한 숙빈 최씨는 해산 한 시간 전쯤 미역국과 쌀밥을 먹었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 필요한 기운을 축적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해산 당일에는 허한 기운을 채우고 신생아게 필요한 젖을 만들기 위해 무려 열 차례 미역국과 쌀밥을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수 많은 문헌에서 한반도 사람들의 미역 사랑이 드러납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미역은 귀천 없이 널리 즐겨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맛이 짜고 비리지만 오랫동안 먹으면 먹을 만하다.’ 하였고, <고려사(高麗史)>에는 ‘제26대 충선왕 재위 중 원나라 황태후에게 미역을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에 수출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도 고려시대 때 왕자가 탄생하면 염분·어랑·곽전(해조류 채취장)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또한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임산부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였고,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해채(海菜), 즉 미역은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없으며. 열이 나면서 답답한 것을 없애고 기가 뭉친 것을 치료하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의 책에도 ‘갓 새끼를 낳은 어미 고래가 어떤 사람을 삼켰는데 고래 뱃속에 미역이 가득하고 그 미역이 오장육부 속 나쁜 피를 물로 변하게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천운으로 살아 돌아온 그 사람에 의해 고래가 산후조리에 미역을 먹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산모들에게 미역국을 끓여 먹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미역은 한반도 모든 어미들에게 널리 출산 후 몸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왕실여인들의 출산지침서 ‘임산예지법’에는 해산일이 다가오면 임부들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미역국과 흰 쌀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조선 시대 산모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것이 미역국과 쌀밥일 뿐 아니라 신생아가 처음 먹는 모유도 미역국과 쌀밥에서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산 후 먹던 미역국을 생일날 먹는 것은 낳아주신 어머니가 겪었을 해산의 고통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는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는 생일날 미역국을 먹을때면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을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각자의 어머니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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