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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 고유 상징이 없는 태극기의 불편한 진실

by 지식노트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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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 우리나라의 첫 국가 상징 태극기는 누가 창안하고 만들었을까요? 여러가지 설들이 난무했지만 현재는 이응준의 창안, 박영효의 제정, 조선 정부 반포라는 단계로 전개·확정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입니다.

전근대 국가이던 조선에는 근대국가에 필요하던 국기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말 개항을 하며 다른 나라처럼 국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1875년 강화도 일대에서 일어난 운요호雲揚號사건 이후, 서양 각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국기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특히 1876년 1월 강화도조약朝日修好條規 체결 과정에서 일본은 "운요호에는 엄연히 일본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을 했는가"라고 트집을 잡았고 당시 조선 관리는 국기가 무슨 의미와 내용을 지니는지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1881년 9월 4일 충청도 관찰사 이종원李淙遠이 고종에게 국기 제정에 대한 장계를 올렸고, 1882년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과정에서 국기 제작이 더욱 구체화됩니다.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될 당시, 역관이었던 이응준李應俊(1832~?)이 5월 14일과 22일 사이에 미국 함정 스와타라(Swatara)호 안에서 처음 태극기 도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박영효朴泳孝(1861~1939)는 1882년 8월, 임오군란의 피해를 수습하기 위해 특명전권대신 겸 제3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했고, 박영효의 일본 방문기 <사화기략使和記略>에 태극기 제작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1882년 9월 25일, 맑음. 새벽 4시 고베에 도착해 아침 8시에 숙소인 니시무라야西村屋에 여장을 풀고, 누각에 올라가 경치를 구경했음. (중략) 새로 제작한 국기를 누각에 달았음. 흰 바탕의 천을 네모나게 세로로 깃대에 걸었는데, 세로의 길이는 가로의 5분의 2를 넘지 않았음. 중앙에는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으로 메우고, 네 모서리에는 건乾·곤坤· 감坎·리離의 4괘를 그렸음. 이는 일찍이 상감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바임." (<국역 해동 총재 Ⅺ> 중 '사화기략', 87.)

박영효는 태극기 제작이 개인적인 결정이 아닌 오래전부터 고종의 명으로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라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초기 태극기 제작은 그런 의미에서 당시 청국의 간섭과 통제를 벗어나 자주국가로 가기 위한 길을 모색한 고종의 의지가 반영된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영효는 태극기는 일본으로 가는 선상에서 제작했으며, 디자인은 일본 주재 영국 영사 애스턴(W. G. Aston, 阿須頓)과 상의해 당시 해외 각국 깃발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영국인 선장과 의논해 만들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영국인 선장은 "태극 주변의 8괘는 시각적으로 복잡하고 타국에서 모방하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4괘만을 네 모퉁이에 그려 넣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어 3개의 시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확정된 국기의 시안을 조정에 보내 보고했다(<사화기략> 89-90.). 태극기는 이듬해인 1883년 3월 6일 자 <승정원 개수 일기承政院改修日記>에 국기 반포에 관한 왕명이 실려 공식 채택됩니다.

 

태극기, 음양과 건곤감리

태극기는 1910년 국권피탈이 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는가 했지만 1949년 대한민국 정부의 국기로 다시 채택됩니다. 그런데 태극기가 가지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과연 태극기의 상징이 한국 문화를 대표하고 있을까요? 

태극기는 중심부에 파란색, 빨간색의 태극이 있고 주변에 4괘가 있습니다. 태극과 4개, 태극기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모두 중국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리는 중국이 원류인 개념과 기호를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면, 중국이 수천년간 우리에게 끼쳐온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태극과 건곤감리가 21세기 한국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상징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이겠지요.

태극에 관한 가장 유명한 책은 11세기 중국 송나라 주자가 쓴 '태극도설'입니다. 이 세상의 근원이 태극이고, 태극은 음과 양을 만들어냅니다. 태극이 운동을 하면 양이 만들어지고, 고요한 상태가 되면 음이 만들어지는 중국 음양론의 기초가 태극입니다. 궤에 관한 유명한 저서는 대표적인 고전 '주역'이 있습니다. 고대 주나라때 만들어진 역이라 해서 주역이죠. 주역은 8괘를 기본으로 64괘가 조합됩니다. 이 8괘중에서 4괘를 따서 태극기에서 사용하였습니다. 

현대 중국에 가면 쉽게 태극 문양과 건곤감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여전히 음양론과 64괘를 활용한 주역이 대중들에게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이슬람의 상징은 초승달은 대부분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 들어가 있으며, 소련 붕괴 이전 사회주의 국가들은 빨간색과 별을 사용했습니다. 한 국가의 정체성이자 가장 큰 상징물인 국기에 그 국가가 추구하는 바가 담겨있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국가였고, 태극과 주역은 성리학에서 주요한 상징입니다. 태극도설을 쓴 주자는 성리학의 시조입니다. 또한 태극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독립운동에 투신해온 우리의 위대한 독립운동가들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해방 이후 태극기가 국기로 계속 사용된 것도 인정할만 합니다. 근 100여년간 한국, 코리아를 상징해온 태극기를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없다는 점도, 이미 그 세월동안 일종의 무형 이미지 자산을 전세계에 구축해놓았다는 사실도 모두 당연히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중국 문화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외국인이 태극기를 바라본다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자연스럽게 중국 문화권의 영향에 있는 나라구나, 중국이 외치는 동북공정 등이 마냥 중국만의 외침은 아니였구나라고 생각할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민족의 온갖 역경을 함께 헤쳐나온 태극기, 한국 고유의 문양이 조금만 더 반영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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