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2 조선시대의 유배형(流配刑), 과정과 종류는 무엇이 있을까? 조선시대의 형벌, 유배형에 대해서 여러 역사 드라마와 책을 통해서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교도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지은 자를 먼 변방이나 오지로 보내는 형벌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옥사는 있었지만, 요즘으로 따지자면 수사와 재판 과정 중인 미결수를 가두어 놓는 임시 구치소만 존재했을뿐, 장기간에 걸쳐 죄수를 수용하는 교도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조선시대의 형벌, 오형제도 조선시대의 형벌은 대명률에 근거하여 집행되었습니다. 대명률(大明律)은 조선이 황제의 나라로 섬겼던 명나라의 형법을 말하는 것이고, 대명률에 기반하여 조선시대에도 다섯 가지 유형의 형벌인 오형제가 실시되었습니다. 오형제는 엉덩이를 가벼운 매로 때리는 태형, 무겁고 묵직한 곤장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장형,.. 2022. 12. 1. 왕십리(往十里)와 답십리(踏十里)의 유래 서울의 역사 중에서 무학대사와 왕십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새 도읍지가 들어설 명당 자리를 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도읍지가 될만한 곳을 찾다가 마땅한 곳이 없어, 무학대사는 한양 근처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소를 타고 지나가던 백발노인이 " 에이, 이놈의 소는 미련한게 꼭 무학을 닮았구나."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무학대사는 깜짝놀라며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노인은 또 다시 소에게 "어리석게 좋은 곳은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는구나."하며 중얼거렸습니다. 무학대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노인에게 다가가"소승의 이름이 무학입니다만 혹 저를 두고 하신 말씀이신지요?"노인은 소만 쳐다볼 뿐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무학대사는 범상치 않은 노인이.. 2021. 11. 1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