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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국회

노란 리본은 왜 추모의 상징이 되었을까?

by 지식노트 2022.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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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서울, 그 중심 광화문 광장에는 아직도 노란 리본이 걸려 있습니다. 청춘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저버린 세월호 아이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노란 리본의 뜻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생각하고 추모한다는 뜻입니다. 노란리본은 과연 언제부터 추모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노란 리본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약 400년 전입니다. 17세기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이 일어납니다. 왕과 의회파의 전쟁이었고 영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시민혁명이었습니다. 의회파의 청교도 군대는 전투에 나갈 때 노란 리본과 노란 띠를 맸고 이것이 노란 리본에 대한 첫 역사적 기록입니다. 그 무렵 영국에서는 'She wore a yellow ribbon'이라는 노래가 유행했습니다. 전쟁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며, 때로는 전쟁터에서 산화한 남편을 추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란 리본의 상징은 영국 청교도들의 대거 신대륙 이주와 함께 미국으로 그 거처를 옮깁니다. 한동안 잊혀져 지내던 노란 리본은 미국에서 남북 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등장합니다. 잔혹한 내전의 전쟁터로 간 남편을 다시 기다리고 추모하는 여성들은 노란 리본을 달고, 노란 리본에 대한 노래를 부르며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노란 리본

 

20세기 들어 노란 리본은 문화를 통해 더욱 큰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1917년 음악가 조지 노튼은 'Round her neck she wears a yellow ribbon'을 밢하고 1949년에는 'She worea yello ribbon'이라는 서부 활극이 만들어져 큰 인기를 누립니다. 1973년에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라는 빌보드 팝송이 만들어지며 전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유진영의 수호자가 되어 해외의 많은 전쟁에 자국 군인들을 참전하게 합니다. 참전 군인들의 가족은 대문에 노란 리본을 걸어 무사귀환을 빌었고, 참전 군인이 무사히 돌아오면 노란 리본을 그제서야 풀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故 노무현 대통령이 2009년 서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노란 리본이 알려지게 됩니다.  이후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며 전 국민이 안타까원 세월호 사고를 추모하며 노란 리본이 전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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