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힘든 시기를 겪습니다. 인생의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고 등돌린 사람들에게 복수를 다짐하기도 합니다
정치인, 정치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소위 승자독식의 'winner takes all' 제도의 비정함에 대해 저마다의 경험이 있 습니다. 야인으로 지내며 그간 공들여왔던 모든 인간관계들이 사실 봄바람처럼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그걸 다시 이겨내는 과정에서 통찰과 지혜를 얻기도 합니다.
하물며 미국의 대통령,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던 권력에서 떨어진 사람의 그 처절함은 어떨까요?. 1953년부터 약 7년간 미국 부통령 직을 역임한 젊은 리처드 닉슨은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합니다. 하지만 아직 당시 나이는 아직 40대 후반, 젊고 패기만만한 공화당의 전직 부통령은 아직 도전정신이 풍부했죠.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급을 낮춰 다시 도전했으나 이번 선거에서도 패배하고 맙니다.
그는 주지사 선거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여러분은 닉슨을 더 이상 괴롭힐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자회견입니다"라며 스스로도 어느정도 정치 은퇴를 암시하는 연설을 합니다
■ 드골의 환대
1962년 야인이 된 닉슨은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힐링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겉으로도, 속으로도 망가진 닉슨은 자포자기한 상태였죠. 유럽 여러 국가들을 돌아다녔지만 이미 그가 끈 떨어졌다고 생각한 각국은 그에게 환영어린 접대를 해주지 않습니다. 서열이 낮은 대표단이나 미 외무성 관리들의 접대를 받으며 식사를 하는 것이 닉슨의 유럽 주요 일정이였죠.
그러나 프랑스 파리에 간 닉슨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은 전직 부통령이지만 현재는 아무 공직도 맡고 있지 않은 닉슨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해 극진한 대접을 해줍니다. 심지어 보렌 당시 마국 주프랑스 대사도 초청하여 부부 동반 오찬을 진행하며 사실상 국빈 대접을 해줍니다.
드골은 마지막에 격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닉슨, 당신은 반드시 정상에 도달할 겁니다" 당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야인처럼 유럽을 떠돌던 닉슨에게 드골의 이 환대는 아마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 박정희의 오판
1966년 이번에 닉슨은 아시아 지역으로 해외여행을 떠납니다. 1996년 9월 일본을 들린 뒤 바로 한국을 방문합니다. 주한 미국대사 윈스럽 브라운은 청와대에 연락해 닉슨 전 미국 부통령의 방문 일정을 논의하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반응은 뜨뜨미지근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끝난 사람을 왜 만나느냐' 같은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과 닉슨 전 부통령은 만찬, 오찬도 아닌 짧은 티타임으로 일정을 마쳤습니다
민망해진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급히 한국 장관들과 함께하는 만찬을 추진했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장관들은 박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닉슨은 미 대사관에서 미군 장성 두서명과 대사관 관계자들과의 조촐한 저녁 식사를 하게 됩니다. 이때 회상하며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 이렇게 기록합니다 "식사 내내 닉슨의 표정은 텅 빈 좌석만큼이나 공허해 보였다"
■ 닉슨의 재기
그 사건으로부터 2년 후인 1968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닉슨은 당당히 승리하여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이 됩니다. 그리고 닉슨은 취임식이 끝나기 무섭게 괌에서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합니다. * 닉슨 독트린 : 아시아에서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
물론 초강대국 미국의 전략적 판단이 들어간 선언이었겠지만, 글쎄요 예나 지금이나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보좌하는 것은 관료 집단의 어쩔 수 없는 행태입니다
어찌됐든 발등에 불 떨어진 쪽은 한국과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닉슨 독트린으로 인해 중국과 북한군이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미국이 더 이상 참전하지 않는다면 적화통일을 각다귀처럼 외치는 북한이 언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닉슨 독트린 발표 직후 박정희 대통령은 바로 미국으로 날아갑니다 그러나 닉슨은 박정희를 순순히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제주도에 군사기지를 내주겠다, 제발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미국은 계속 검토해보겠다는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이에 한국이 다시 정상회담부터 진행하자고 했으나 미국은 대통령의 여름휴가 시즌에 만나자고 얘기합니다.
결국 만남 당일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샌프란시스코 호텔로 오라고 하였고,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수 많은 절차를 거쳐 호텔방 거실에 가서야 닉슨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더 큰 굴욕은 저녁 식사 자리였습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시시껄렁한 자기 고향 친구들을 불러 일국의 대통령인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요즘 그런 일이 발생하면 정말 외교적으로 큰 결례이지만 당시 아시아 소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2년전 자기의 오판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물을 삼킬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