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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42

조선시대 최고의 의결기관 의정부, 왜 지금은 지명으로 바뀌었을까? 지금은 우리에겐 지명으로 더 익숙한 이름이지만 의정부는 사실 조선시대 최고 의결기관, 지금으로 따지면 행정부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최고의 의결기관은 왜 서울 동북부의 지명으로 바뀌어 불리는 것일까요? '의정부'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최고 의결기관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태종이 임금이던 태상왕 시절에 의정부(현재 의정부시)에 머무르며 6조 판서와 정사를 의논하였다고 하여 그 명칭이 이 곳의 명칭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조선 초 1400년 2차 왕자의난 이후 이방원은 제3대 태종으로 전위하나 태조(이성계)는 태종에 대한 증원의 감정을 참지 못해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립니다. 이에 태종은 여러차례 차사를 보냈지만 태조는 물론, 차사 역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무학대사가 함흥으로 가.. 2021. 11. 16.
박태보(朴泰輔), 의연한 선비정신을 보여준 조선의 선비 숙종 15년인 1689년 음력 5월5일 아침 노량진 사육신 묘지 옆에서 조선의 기개 박태보(朴泰輔·1654~89)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열흘 전 오두인(吳斗寅) 등 86명이 숙종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숙종이 인현왕후(仁顯王后)를 폐출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 29살의 젊은 왕은 아들(뒷날의 경종)을 낳아준 장희빈에게 빠져 정비(正妃)인 인현왕후를 내쫓고자 했고,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상소는 오두인 등의 상소가 처음이었습니다. 숙종은 분노하여, 한밤중 (삼경,三更·오후 11시~오전 1시)에 친국(親鞫)을 하겠노라 천명했다. 오두인 등이 모두 끌려왔습니다. 숙종이 물었습니다 "누가 상소문을 썼느냐?" 오두인 등이 대답했습니다 "박태보입니다." 박태보가 끌려왔습니다다. 숙종의 진노를 박태보는 태연히.. 2021. 11. 15.
조선의 연쇄살인마, 사도세자 사도세자 이선(1735~1762)은 ‘당쟁의 희생양’으로 주로 인식돼 왔습니다. 엄한 아버지 영조의 꾸지름에 의해 뒤주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알려져 있죠 과연 사도세자는 억울한 죽음의 희생양일까요? 그는 사실 조선의 가장 잔혹한 연쇄살인마였습니다. 영조는 세자를 폐하면서 “세자가 죽인 중관, 나인, 노속이 100여명에 이른다”라고 발표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세자는 체격이 크고, 뚱뚱했습니다 영조 20년 (1744년) 4월 14일 말합니다 “세자가 식사량이 너무 많고 식탐을 억제하지 못해 뚱뚱함이 심해지고 배가 나와 열 살 아이 같지 않다” “(세자가) 글을 이해하는 능력은 뛰어 나지만 뚱뚱해서 얼굴 생김새가 별로라 답답하다”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도 말년에 쓴 회고록 ‘.. 2021. 11. 15.
소금 염(鹽), 역사가 말해주는 소금의 중요성 마태복음 5장 13~16절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빛과 소금과 같은 사람이 되어라' 빛은 태양으로부터 받습니다. 자연의 섭리, 우리가 건드릴 수도 없으며 일방적입니다. 소금은 바다로부터 나오지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물체입니다. 소금을 뜻하는 소금 염(鹽), 한자를 풀이하면 신하가 왕에게 그릇을 들고 있는 모양입니다. 왕의 절대적 권위를 상징하는 소금, 소금을 가지기 위한 역대 권력자들의 노력은 대단했습니다. 소금의 전매제도는 국가의 재정과 권력을 확보하는 방법이자, 복지정책의 재원이었습니다. 권문세가로부터 권력을 탈점하기 위해 소금 전매제도를 실시한 고려 충렬왕, 백성을 위한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소금 전매 관청을 설치한 조선 세종 모두가 소금과 권력을 동일시 하였습.. 2021. 11. 14.
북촌 한옥마을과 야스쿠니 신사가 같은 뜻이라고? 안국에 얽힌 이야기 종로구 안국동은 동명의 한자 음과 딱 부합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중간으로 ‘나라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안국동의 유래는 한성부 북부 12방 중 하나였던 '안국방(安國坊)'의 지명을 그대로 따왔습니다. 편안할 안, 나라 국. 안국, 나라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뜻이 있는 동네입니다. 젊음과 나이듦이 공존하는 북촌마을이 있는 안국이 우리에게 악명높은 야스쿠니 신사와 사실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아셨나요? 야스쿠니신사의 유래는 18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설립될 다시 이름은 초혼사(招魂社) 메이지유신 이듬해 일본 정부는 전쟁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도쿄 천황궁 옆에 초혼사를 지었습니다. 처음 세워졌을때의 뜻과 다르게 초혼사는 다르게 변질되어 갔습니다.. 2021. 11. 14.
당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을 불후의 군주로 남게 한 참모, 위징 당(唐) 태종(太宗)과 위징(魏徵)의 관계는 인재를 어떻게 구하여 쓰고, 그리고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일천삼 년을 훌쩍 뛰어 넘는 시대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큰 가르침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당 태종의 최측근이라고 할수 있는 방현령은 51번 언급되는 반면에, 위징은 무려 101번 나와 태종의 “정관(貞觀)의 치(治)”에서 차지하는 위징의 비중을 가름하게 합니다. 위징은 본래 당 고조(高祖)의 태자인 이건성의 책사로 이세민을 죽일 것을 간했다고 합니다. 당의 건국에 이세민의 공이 가장 컸음에도 불구하고 적장자 후계 명분에 밀려 맏아들 이건성이 태자로 책봉되자, 이세민의 불만으로 인해 왕자들 간의 권력 투쟁이 심각해집니다. 결국 이세민은 황제의 이름을 빌려 형제.. 2021. 11. 14.
한국은 청백전, 일본은 왜 홍백전?, 전쟁의 역사가 남긴 흔적 어릴 적 운동회를 하면 항상 청팀과 백팀으로 학생들을 나누어 진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반 또는 학년으로 나뉘어 친한 친구들과 같은 팀을 하다보니 큰 생각없이 지나갔던 적이 많죠. 연말이나 연초 일본 가요무대를 보면 NHK 홍백가합전이라는 무대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심코 지나갔다. 홍백? 일본만의 문화겠지라며 생각했었습니다. 일본의 홍백전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1185년, 일본 역사에서 무가 정치의 시대가 열리는 대사건이 일어납니다. 시모노세키 앞바다 일어난 겐페이해전. 일본 사무라이의 원조인 겐지 가문과 헤이케 가문의 대혈투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승자는 유명무실해진 천황을 모시며 그 후로 약 메이지유신까지 약 700년간 일본을 다스리게 됩니다 사무라이 최초로 천하를 쟁취한 헤이케는 홍기, 겐.. 2021. 11. 14.
고집불통 벽창호 , 북한 지방의 소(牛)에서 유래한 재밌는 어원 앞뒤가 꽉 막힌 고집불통을 우리말로는 '벽창호'라고 하는데 이는 이 말은 원래 '벽창우(碧昌牛)'에서 나온 말로,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소(牛)가 크고 억세다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지방의 소들은 제 기분에 맞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 고집불통이었으며,모르는 사람이 와서 끌고 가려고 하면 고집스럽게 버텨서 웬만한 어른들도 다루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힘이 세고 고집이 센 벽동과 창성의 소들의 특성을 빗대어 '벽창우'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벽동과 창성의 소같이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을 가리킬 때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을 일컬을 때 '벽창호'라고 하는데, 이 '벽창우'가 변해서 된 말입니다. 2021.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