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소위 극우 보수, 반공투사들은 항상 대형교회와 함께합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드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저절로 나오는 말 "OH MY GOD"한국의 대형교회들은 왜 극우반공을 기치로 내세우게 되었을까요? 유래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세력들로부터 대형교회들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명성교회, 영락교회, 소망교회, 사랑제일교회 등 언론에서 많이 보도된 대형 교회들은 모두 한기총 소속이며 현재 회장이 그 유명한 전광훈 목사입니다. 그리고 한기총의 시작에는 영락교회 설립자인 한경직 목사와 그의 뒤에 서있던 서북청년단이 있습니다. 해방 직후 북한지역에서 탄압을 받던 서북지역의 기독교인들이 대거 남한으로 내려와, 서울 곳곳에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입니다.
해외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해외 한인 커뮤니티의 중심이 교회라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해방 직후의 한국의 서북교회들도 그런 역할이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반공주의와 보수개신교가 결합해서 정권을 비호하는 시스템이 형성된 것은 해방 후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가 살아남기 위해 반탁-반공 운동을 시작했는데, 여기에 서북에서 내려온 기독교인 청년들이 대거 합류합니다.
서북청년단의 그런 과격한 활동의 배후에는 이승만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그들의 활동을 용인하고 지원해 준 것이 가장 컸습니다. 이승만은 약 3년간 서북청년단을 철저히 활용했고, 이때 서북청년단이 저지른 가장 참혹한 범죄가 바로 제주 4.3사건 제압이였다. 나치와 KKK를 방불케할만큼 잔혹하게 탄압했다고 합니다.
서북청년단이 갈수록 기세등등해지고, 너무 잔혹하고 과도하게 치외법권적인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정권을 확실하게 잡은 이승만은 이들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1949년 10월 단체 등록을 취소하고 이들과 거리를 둡니다. 4.19 혁명에 의해 이승만은 쫓겨나고, 5.16 쿠데타에 의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섭니다.
그리고 당시 전후 선교사업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던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은 박정희 쿠데타와 그 정권을 전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들 구성원들이 5.16 쿠데타 당시 군 장성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1947년 조선경비대(국군)와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에는 서북 출신 청년들이 대거 입교합니다. 47년 입교한 육사 5기생은 서북 출신이 무려 2/3나 되었고, 48년 입교한 8기에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들 5기와 8기 출신의 장성들이 바로 1961년 박정희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군부정권과 결탁하여 수십년간 부와 명예를 누려온 이들은 현재도 한국 개신교의 주류를 형성하며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1989년 6월 한 신문기자는 당시에 흥미로운 유행어를 소개합니다. “비행기를 타려면 TK North-West United Airline 타라!” 이 말이 나온 배경은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대구경북(TK) 출신들이고, 여기에 국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그룹 상당수가 서북 출신들(국회의장,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이라는 것을 빗댄 것입니다. North-West는 서북청년단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