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식&술

사이다는 어떻게 한국의 국민음료가 되었을까?

by 지식노트 2022. 3. 17.
반응형

 

 

사이다(Cider)는 원래 유럽에서 마시던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가벼운 술을 뜻합니다. 오늘날 탄산이 톡톡 터지는 사이다와는 다른 음료지요. 라틴어 시케라(sicera)에서 유래된 이 사과술은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시드로(cidre),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사이다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영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이 사이다에 과일향을 첨가해 '샴페인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면서 술이 아닌 탄산음료로 바뀌게 됩니다. 

사이다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오게 된 곳은 인천 부두입니다.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출발지이자 개화 문물을 대거 받아들인 유입지이기도 합니다. 1905년 인천 중구 신흥동에 '인천탄산제조소'라는 회사가 세워져 미국식 5마력 발전기를 이용해 사이다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1910년 신흥동에는 '라무네제조소'가 세워져 라이온 헬스표 사이다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라무네는 레모네이드를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편하게 줄여서 부르른 이름입니다. 20세기 초 당시에는 물 말고는 마실 것이 식혜나 수정과 정도였는데 톡 쏘는 상쾌하고 달콤한 음료가 출시되자 대중들에게 광범위하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해방 즈음에는 전국에 약 12개 정도의 사이다 고장이 있었고, 그 당시에도 인천은 사이다의 1번지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칠성사이다

최초의 사이다 제조사, 인천탄산제조소가 후신인 경인합동음료는 여전히 최고의 사이다 제조회사로 전국적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다 사이다가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인천 사이다의 영향권 아래였습니다. 경인합동음료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회사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칠성사이다'입니다. 창업자 7인의 성이 모두 달라, 일곱개의 성을 의미하는 칠성사이다로 이름을 짓고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지금은 영원한 번영을 다짐하자는 뜻으로 북두칠성의 칠성으로 개명)

당시 사이다는 사카린 녹인 물에 탄산가스를 주입하여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맥주 캔이나 콜라 캔을 잘라 병뚜껑을 만드는 수준이었는데, 후발주자였던 칠성사이다는 축적해둔 노하우 등으로 제품의 퀄리티를 대폭 개선하며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합니다. 1950년대에는 청와대에서 직접 전화로 주문해 수표를 주고 박스째 사이다를 가져갔다는 소문도 전해질 정도였습니다. 

1957년 사이다 시장을 사실상 제패한 칠성사이다는 '스페시코라'라는 이름으로 콜라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1968년에는 펩시콜라와 보틀링 계약을 체결합니다. 1964년에는 경쟁자이던 서울사이다를 인수하고 1966년 백마부대 월남파병과 더불어 월남에 사이다를 수출하기 시작하니 가히 대한민국 사이다 시장은 '칠성사이다'로 천하통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1973년 오일쇼크로 인해 국내외 경제가 요동치고, 리스크가 많이 발생하며 회사는 경영 위기를 맞이합니다. 결국 칠성사이다는 이때 롯데그룹에 인수되어 '롯데칠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롯데그룹의 계열사가 됩니다. 1970년대 이후 칠성사이다는 1인자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해태사이다, 코카콜라의 킨사이다, 동아식품의 나랑드사이다, 천연사이다 등 칠성사이다의 자리를 한때 위협했던 경쟁자들이 있었으나, 칠성사이다는 70년 넘게 독보적인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습니다. 국내 사이다 시장에서 80퍼센트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전세계 1위 사이다 상품인 코카콜라의 스프라이트도 한국에서만큼은 칠성사이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이다의 제조과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여러 번 정수 처리한 물에 레몬라임향, 설탕, 구연산 등을 혼합한 뒤 마지막에 탄산을 주입하여 급속 밀봉합니다. 깨끗한 물과 혼합물의 배율이 맛의 핵심입니다. 칠성사이다는 레몬과 라임에서 추출한 천현향을 사용하는데, 배합 비율 등은 현재도 기밀로 유지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장수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친밀함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무기입니다. 70여년이 넘도록 유지되어,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모두가 아는 브랜드의 친숙함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칠성사이다가, 사이다 브랜드 그 자체가 되어버렸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