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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노트274

누가 돌아가시면 49재를 지내는 이유(49재의 의미와 방법)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뤄야 합니다. 죽은 당일부터 삼일상을 지내고, 그 다음에는 망자가 돌아가신지 49일 뒤에 지내는 49재를 지냅니다. 오랜 세월 우리 선조들이 대대로 지내온 49재는 무엇이며 왜 지내는 것일까요? 49재는 불교문화로부터 파생된 우리 나라 고유의 장례문화입니다. 죽은 뒤 망자는 49일 동안 저승에서 그간의 잘잘못에 대해 재판을 받는데, 49일 동안 저승의 왕인 염라대왕에게 "우리 돌아가신 어르신 잘 좀 봐주세요" 하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 49재입니다. 우리는 삶을 생·노·병·사로 나눕니다. 살다가 늙으며, 병들고 죽습니다. 그러나 윤회론을 주장하는 불교에서는 여기에 사후를 넣어 생·본(노병에 해당)·사·중유(中有)의 네 단계로 구분합니다. 즉 죽고 나서 새로운 삶을 받기 이전 단계인 .. 2022. 7. 20.
무능력한 상사가 많은 이유,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도대체 왜 이렇게 무능한 상사가 많은가? 이 사람은 어떻게 저 자리까지 갔는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무능력한 상사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매번 새로운 유형의 빌런들을 만나며 직장인들은 점점 인류애를 잃어갑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무능력한 '상사'가 많은 것일까요? 캐나다 출신의 교육학자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는 1969년 자신의 저서 『피터의 법칙(The Peter Principle)』에서 직장내 무능력한 상사가 많은 이유를 이론적으로 제시합니다. 피터의 법칙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조직에서 모든 직원은 자신의 무능력이 증명되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수직적 계층조직에서 승진은 기존 직책의 업무 성과.. 2022. 7. 20.
한국인이 출산 후,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이유 한국 사람들은 아이를 낳거나, 생일이 되면 꼭 '미역국'을 챙겨 먹습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미역국을 먹는 것은 좋지만 왜 우리는 항상 미역국을 먹어왔을까요? 한국 사람들이 미역국을 먹기 시작한 것은 무려 천 년이 넘습니다. 이제는 한국인의 전통 음식이라고해도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의 옛 문헌에 우리나라의 미역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당나라 때 서견(徐堅·659~729) 등이 지은 백과사전 ‘초학기(初學記)’에 고래가 새끼를 낳고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역을 뜯어 먹는 것을 보고 고려인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한국인들은 고래가 출산을 하고 미역을 뜯어먹는 것을 보고 미역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한반도에 고래라니? 라는 생각.. 2022. 7. 16.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가 찍은 영화 '라쇼몽'은 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수작입니다. 한 사무라이의 죽음을 두고 이에 관련된 네 명의 진술이 모두 엇갈리는 상황을 다뤘습니다. 영화는 헤이안 시대에 사무라이 부부가 도적을 만나 남편은 사망하고 아내는 겁탈 당한 사건을 다룹니다. 나무꾼의 신고로 잡혀 온 당사자들은 같은 사건을 전부 다르게 진술합니다. 도적은 겁탈 당한 여인이 자신을 받아들인 후 남편을 살해하라고 말해 무사를 죽였다고 진술합니다. 부인은 겁탈 당한 후 남편의 경멸을 견디지 못 해 자신을 죽여달라 절규하다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남편이 죽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무녀에게 빙의하여 진술하는 죽은 무사는, 도적에게 추태를 보이는 부인의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자괴감에 자결했.. 2022. 7. 12.
대구 지명으로 남은 태조 왕건의 도망길 927년 아직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태조 왕건의 고려와 견훤의 후백제가 경상도 대구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일명 공산전투라고 불리는 이 전투에서 태조 왕건은 대패하고 초창기부터 자기를 따르던 소중한 부하들도 목숨을 잃습니다. 왕건도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겨우 도망치는데, 왕건이 도망치던 길이 역사가 되어 현재에도 대구의 주요 지명으로 남아있습니다. - 팔공산(八公山), 공산에서 신숭겸, 김락 등 왕건의 가장 충성스러운 8명의 장수가 순절하였기에 후일 팔공산이라 이름지었습니다. - 파군재(波軍재), 불로동에서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리는 길목에 있는 재를 가리키는데, 신숭겸 장군의 군사가 1차로 견훤군에 패해서 흩어진 곳으로 알려진 파계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아랫 파군재라 하고, .. 2022. 7. 12.
대구가 치킨 성지가 된 이유는? 매년 7월이면 대구에서 지상 최대 규모의 치맥 축제가 펼쳐집다. 대구의 소울 푸드인 치킨을 맥주와 함께 먹고 즐길 수 있는 이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여름 축제입니다. 2013년 첫 축제가 시작된 이후 '대구치맥페스티벌'은 불과 수년 만에 대구지역 대표 축제로 성장했고, 2018년 행사 때는 100만명이 넘는 국내외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대구 치킨이 유명하다는 사실 아셨나요? 대구는 왜, 언제부터 치킨의 성지가 되었을까요? 여러분이 아는 많은 유명 치킨 브랜드들이 바로 대구에서 탄생했습니다. 대구는 일제강점기부터 전국 양계산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대구는 서문, 칠성, 남문 등 대규모 전통시장들이 몰려있어 대규모 유통이 용이했으며, 조선 시대부터 경상도 전체를 관할하는 경상감영이 설치되었을.. 2022. 7. 12.
[먹자골목 시리즈] 28. 을지로 골뱅이골목 서울의 가장 힙한 곳 힙지로에는 두 가지 명물이 있습니다, 이른바 만선호프로 대표되는 을지로 노가리와 오늘 소개해드릴 을지로 골뱅이가 그 주인공입니다. 원래 을지로는 골뱅이로 더 유명했으나 2010년대 들어오며 SNS를 통해 노가리 골목이 더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을지로는 일제강점기에는 황금정(黃金町)이라 불렸습니다. 황금정은 당시 경성의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금융기관이 있었고 각종 상회가 밀집해 있었습니다. 1970년대 고도성장이 시작되며 종로 일대의 주택이나 사무실 정비를 위해 필요한 타일과 도기, 공구, 조명 가게가 을지로에 많이 차려졌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부터 영화관이 충무로 등 일대에 몰려있어 영화 홍보 전단 업체가 있었고, 한지 가게들도 모여있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을지로 인쇄 골목이 만.. 2022. 7. 9.
[먹자골목 시리즈] 27. 오장동 함흥냉면거리 냉면계 천하에는 절대강자 ‘평냉파’와 ‘함냉파’가 있습니다. 슴슴한 국물의 평양냉면과 매콤한 양념의 함흥냉면으로 취향이 갈리는데, 간이 세고 자극적인 맛을 좋아한다면 ‘함냉파’로 가는게 옳은 선택입니다. 함흥냉면은 북한 함흥지역에서 즐겨먹던 함경도식 국수의 변형입니다. 이북에서는 감자가 흔하고 많아 감자 녹말가루르 면을 뽑아서 '농마국수'라는 것을 많이 먹었습니다. 또한 북한은 가자미가 흔해 가자미 고명을 양념에 무처 국수 위에 고명으로 얹어 먹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흥남 철수를 계기로 함경도 지방 실향민들이 서울 오장동 일대에 대거 정착했습니다. 흥남은 조선시대부터 명태 등 건어물의 주산지였으니 흥남 사람들은 서울에서도 자연스럽게 건어물 관련 일에 종사했고, 오장동에는 자연스럽게 국내.. 2022.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