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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노트273

켈트족의 사제, 디아블로의 드루이드(Druid) 게임이나 소설, 영화 등에서 많이 등장하는 드루이드. 한국 남자들에게는 특히 디아블로라는 게임에서 등장하여 매우 유명합니다. 주로 동물이나 식물, 영혼과 원소를 다루는 역할로 흔하게 등장하곤 합니다. 드루이드는 원래 고대 유럽을 지배했던 켈트족의 사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켈트족은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카스피해 동쪽의 대초원에 살던 인종입니다. 기원전 5세기에 세력을 많이 키운 켈트족들은 유럽 전역에 부노하며 큰 영향력을 떨칩니다. 기원전 390년 로마를 공격해 7개월 동안 점령하기도 했으며 마케도니아의 왕을 전사시키기도 합니다. 소아시아 반도까지 진출하여 갈라티아라는 왕국을 세울 정도로 호전적인 민족이기도 했습니다. 켈트족은 심오한 자연의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켈트 부족들은 드.. 2022. 3. 28.
무협 소설 속 마교의 원조, 마니교 중국 무협의 원조 김용이 쓴 의천도룡기로부터 시작해, 많은 무협지 속에는 마교와 명교가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악의 본거지이기도 하며, 정파대전과 사파대전을 일으키는 중원 침략의 원흉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협지에서의 각색된 모습과 다르게 마교는 실제로 평화적 교리를 가진 종교였습니다. 명교(마교)는 마니교라는 종교의 중국식 표현입니다. 명교라는 이름도 중국식 호칭이고 원래 이름은 마니(Mani)교 입니다. 종교의 창시자가 페르시아인 마니이기 때문입니다. 마니는 216년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 인근 크테시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파타그는 일대에 유행하던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교리를 합친 신비주의 종교 영지주의를 신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높고 초월적인 신이 자기 아래 하위 신들 데미고르곤을 .. 2022. 3. 28.
[먹자골목 시리즈] 22. 부산 범천동 조방낙지골목 부산하면 낙곱새, 낙곱새하면 부산입니다. 부산에서도 낙곱새로 가장 유명한 동네, 부산 범일동 조방낙지골목입니다. 부산 범일역 10번 출구에 내려 50여미터 정도 골목 안으로 들어오면 먹자 골목이 펼쳐집니다. 젊은 관광객들과 부산 토박이들이 뒤섞여 낙지 가게에 앞서거니 들어가고 있습니다. 낙지는 옛부터 우리 선조들이 많이 즐기며 다양한 요리를 개발해온 음식재료입니다. 특히 정약용 정약전 형제의 낙지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맛이 달콤하고 회, 국, 포를 만들기 좋다고 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회, 숙회, 볶음, 탕, 산적, 전골, 초무침, 구이에서부터 다른 재료와 궁합을 이룬 갈낙(갈비살과 낙지), 낙새(낙지와 새우), 낙곱(낙지와 곱창)이 개발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라는 시에서 .. 2022. 3. 23.
한국 고유 상징이 없는 태극기의 불편한 진실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 우리나라의 첫 국가 상징 태극기는 누가 창안하고 만들었을까요? 여러가지 설들이 난무했지만 현재는 이응준의 창안, 박영효의 제정, 조선 정부 반포라는 단계로 전개·확정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입니다. 전근대 국가이던 조선에는 근대국가에 필요하던 국기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말 개항을 하며 다른 나라처럼 국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1875년 강화도 일대에서 일어난 운요호雲揚號사건 이후, 서양 각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국기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특히 1876년 1월 강화도조약朝日修好條規 체결 과정에서 일본은 "운요호에는 엄연히 일본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을 했는가"라고 트집을 잡았고 당시 조선 관리는 국기가 무슨 .. 2022. 3. 22.
한국인의 만병통치약, 까스활명수의 역사 1897년 고종황제가 대한민국 황제로 즉위하며 근대국가가 시작될 때, 활명수가 우리나라 제품 브랜드의 역사를 최초로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대한제국 궁중 선전관으로 있던 민병호가 궁중의 생약 비법에 서양 의학 기술을 접목해 만든 소화제 활명수는 세계 최초희 합성의약품으로 알려진 '아스피린'과 동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소화불량은 생각보다 크고, 자주 겪는 병이었고 급체나 토사곽란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당시에는 꽤나 중한 병으로 치부되던 시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빨리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에 비위생적인 조리 환경 등이 더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소화불량에 시달렸습니다. 당시 치료제라고 해봐야 뜸이나 침 혹은 시간을 들여 달여야하는 탕약밖에 없었으니 빠른 치료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활명수는 간.. 2022. 3. 21.
청와대 터의 역사와 논란 TV를 틀면, 신문을 보면 온통 청와대 이전 얘기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궁금해졌습니다, 청와대는 과연 언제부터 국가지도자가 집무를 보던 자리일까요? 청와대의 상징성은 어느 정도 일까요? 청와대 터는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완공된 남경 이궁(離宮·별궁)이 있던 곳입니다. 조선 건국 후 태조가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경북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밖의 후원(後園)에 해당하는 자리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어영(御營)의 연무장(鍊武場)이나 과거장(科擧場), 또는 임금의 친경(親耕, 임금이 직접 경작)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시대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1927년에 모두 헐리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 관저(官邸)가 건립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로막아 그 앞에 청사를 짓고 뒤편엔 총독 관.. 2022. 3. 21.
롱기누스의 창 롱기누스의 창(Spear of Longinus)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성창이라고 불리는 롱기누스의 창은 [Holy Lance,聖槍)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한 병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찔렀는데 예수의 피가 묻어서 성스러운 창이 되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그가 살았나 죽었나 확인 차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로마 병사의 이름인 롱기누스에서 유래했습니다. 롱기누스라는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이 소개된 기독교적 기원은 신약성서의 요한복음입니다. 여기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옆구리를 로마 병사가 창으로 찔렀고, 이때 예수의 배에서 물과 피가 흘라나왔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예수의 죽음을 거론한 기독교4복음서 중에 요한복음에만 기.. 2022. 3. 20.
죽음의 상징이 된 중국 북망산(北邙山) "북망산에 오르다, 북망산에 올랐다". 우리 문화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말할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북망산(北邙山)의 사전적 풀이는 '무덤이 많은 곳 또는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북망산이 중국낙양 인근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이라는 사실, 아셨나요? 북망산은 실제 지명으로,중국 7대 고도의 하나인 뤄양(낙양洛陽: 낙양은 예전에 '뤄양'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것) 서쪽에 있는 산입니다. 낙양은 중국 역사에서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왕과 황제들이 도읍으로 삼은 수도였습니다.자연스레 옛날의 왕후나 공경[公卿]들이 대부분 낙양 근처의 산에 묻혔습니다. 북망산(北邙山)의 본래 이름은 망산(邙山)입니다. 망산이 낙양의 북쪽에 위치하기에 북망산이라 불리웁니다. 북망산.. 2022. 3. 20.